정부가 고환율 대응책으로 내놓은 국내시장복귀계좌(RIA)에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는 엔비디아 같은 미국 우량주를 팔고 그 대금으로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대형주로 갈아탔다. 다만 전체 시장 규모 대비 실제 환전액이 적어 당초 기대했던 환율 안정 효과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21일 세계일보가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증권에 의뢰해 집계한 RIA 가입 현황에 따르면, RIA가 출시된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7일까지 4주간 이들 3개 주요 증권사 계좌에 입고된 금액은 총 4803억원이다. 같은 기간 금융투자협회가 파악한 전체 RIA 누적 잔고 9242억원의 52%에 달하는 수치다. 시장 전체의 누적 가입 계좌 수는 14만7647개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4만3513개가 이들 3개 대형 증권사에 개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5월 말까지 해외주식을 매도해 원화로 복귀하면 양도소득세를 100% 공제받을 수 있어 초기 가입이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에서도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매수세 둔화가 확인된다.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올해 1월 50억달러, 2월 39억5000만달러, 3월 16억900만달러로 지속 감소했으며 4월 들어서는 15억달러 순매도로 돌아섰다. 높은 원·달러 환율에 따른 환전 부담이 가중된 데다 국내 증시 활황이 겹친 영향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런 자금 이동이 단기적 환율 하락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규모가 작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전체 가입자의 계좌당 평균 잔고는 납입 한도인 5000만원의 12% 수준이다. 실제 원화로 환전된 외화 주식 규모 역시 주요 증권사별로 약 90만~190만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루 평균 139억달러가 거래되는 국내 현물환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환율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0.1%대 미만이다.
올해 다른 계좌에서 해외 주식을 다시 사들이면 세제 혜택이 줄어드는 제도적 제약도 추가적인 자금 이동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증시가 지정학적 변수에도 호황을 이어가고 있어 투자자들이 대규모 매도에 나서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나스닥 지수는 17일(현지시간) 기준 13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1992년 이후 최장기간 상승 기록을 세웠고, S&P 500 지수도 사상 처음으로 7100선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자금 유입 규모로는 외환시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어렵다”며 “투자자들이 해외 우량주에 대한 장기적 기대를 포기하고 단기적인 세제 혜택만으로 대규모 자금을 국내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