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작업반(Working Group of Bribery·WGB)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법안 초안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배경에는 한국 수사 시스템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도 부패 범죄에 대응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과거 국제기구와 일했던 한 법조인은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사안에 대해 해당 대상 국가 당국에 권고 내지 서신 등을 지속적으로 보내며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WGB는 OECD 뇌물방지협약 가입국들의 부패 방지 협약 이행을 점검하는 기구다. 회원국의 부패 대응 역량과 부패 수사 시스템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점검 사항이다. WGB의 평가는 크게 법제평가, 법안 시행 구조 확인, 취약점 검토, 시행 성과 및 권고사항 총 4단계로 이뤄진다. WGB는 심사 완료 후에도 평가 대상 국가의 협약 이행 및 위반 여부 등에 따라 정기적 보고 요청·의장 서한 전달·기술 실사단 파견·공개 성명 등의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WGB가 한국의 수사 환경 변화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22년 4월 검수완박법이 추진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고 코스 당시 WGB 의장이 법무부에 “귀국의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을 위한 입법 움직임에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면서다.
한국은 1997년 OECD 뇌물방지협약에 서명한 후 1999년 1월 ‘국제 상거래에서의 공직자 뇌물방지법’을 제정해 WGB로부터 부패 수사 시스템을 평가받아 왔다. 2018년 완료된 4단계 평가에서 WGB는 국제뇌물범죄 수사에 있어 검찰·경찰 간의 협조 강화, 자금세탁 범죄 강력 수사 등을 권고했는데, 2022년 검수완박법이 등장하자 WGB는 한국의 수사 및 기소체계가 심각하게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검수완박법 입법 후인 2024년 11월, WGB는 실사단을 한국에 파견했다. 실사단은 급격한 제도 변화나 복잡해진 부패 범죄 대응 시스템 등을 점검하고 검수완박법의 문제점과 검찰청 폐지 등의 영향을 검토했다.
WGB가 추진위 측에 서한을 보낸 시점에는 검찰청은 폐지가 확정됐다. 여기에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마저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을 중심으로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울러 검찰은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으로 논란에 휩싸였고, 이에 반발한 검사장들에 대해 법무부가 ‘징계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공개 회의록(summary record)에 대해 한 법조인은 “구체적인 우려가 있더라도 국제기구의 권고는 다듬어서 표현한다”면서 “(이번 서한은 검찰 개혁 관련 법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고, 결국 이를 둘러싼 우려점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2023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를 보복 기소했다는 의혹이 있는 안동완 전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것을 시작으로 이창수 전 서울중앙지검장, 손준성 전 차장검사 등에 대한 줄탄핵 사태에 대한 우려도 이번 서한에 반영됐다.
한국은 향후 WGB 측에 공소청·중수청 체계로도 부패 범죄 등에 대한 대응 역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특히 중수청 신설로 인한 수사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통로로 평가되는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존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국제형사 분야 전문인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WGB 측은 반부패 대응을 잘하던 수사기관의 권한을 뺏는 것이 국가의 부패 수사 역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검찰 개혁 법안 초안 등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응하는 입장에선 중수청 등이 부패 수사 등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