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함성이 사라진 운동장, 그 자리를 채운 건 비수 같은 민원과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였다. 점심시간,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다. 축구공 튀는 소리도, 득점의 환호성도 들리지 않는다. ‘공을 차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과 혹시 모를 사고 책임을 우려한 학교 측이 점심시간 축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한때 마을의 생동감을 상징했던 아이들의 소리가 이제는 공권력을 불러내는 ‘불법 소음’ 취급을 받는다. ‘학교체육’이 이른바 ‘프로불편러’들의 공세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의 터전이 갈등 없는 ‘무균실’을 넘어 생기 잃은 ‘침묵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학교 운동회 소음 때문에 경찰이 출동하는 나라가 정상인가”라고 반문하며 “아이들의 함성을 소음으로 규정하고 사과를 강요하는 시스템이 학교체육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천 원내대표는 최근 대정부 질문에서 화제가 된 ‘초등학교 점심시간 축구 금지’ 문제를 넘어, 교사가 민원과 소송의 공포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천 원내대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체육 현장은 이미 ‘민원의 공포’와 공권력의 개입으로 잠식된 상태다. 2026년 4월 기준 전국 초등학교 6189곳 중 312곳이 민원 등을 이유로 교과 시간 외 스포츠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부산은 30%가 넘는 학교가 아이들의 활동을 제약 중이며, 서울 역시 그 비율이 2024년 14%에서 올해 16%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
◇경찰 출동 98.5%…‘치안 행정’에 점령당한 학교=더욱 심각한 것은 교육 현장에 공권력이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학교 운동회’ 관련 112 신고 350건 중 무려 98.5%(345건)에 경찰이 현장 출동했다. 민원이 접수되면 사실상 예외 없이 경찰이 학교로 출동한 셈이다.
천 원내대표는 “경찰조차 민원에 위축돼 출동할 게 아니라, ‘운동회 소음은 수인(受忍)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교육 활동 소음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과 경찰 출동 지침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 도입 시급”=천 원내대표는 일선 교사들이 축구를 금지하는 등 활동이 위축된 근본 원인으로 ‘독박 책임’ 구조를 지목했다. 그는 해법으로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를 제안했다. 이 법안은 지난 대선 당시 이준석 대표가 내걸었던 핵심 공약을 계승·발전시킨 모델이다.
그는 “교사가 직접 경찰서와 법원을 전전하며 홀로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며 “고소가 접수되는 즉시 교육청 변호사가 자동 배정돼 대응하는 전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교사 대상 아동학대 고소 중 유죄 판결은 1%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조사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과 위축 효과가 ‘학교체육’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 원내대표는 민원 대응 시스템의 전면 개편도 촉구했다. 학교 현장이 민원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상급 기관이 악성 민원을 사전에 걸러내는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다.
“학교는 무균실이 되어선 안 된다”고 단언한 그는 “상처받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상처를 입어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상처와 갈등 속에서 회복을 배우는 것이 교육의 본질임에도, 지금은 오직 ‘민원 관리’에만 매몰돼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진단이다.
끝으로 그는 “아이들이 흙먼지를 마시고 공을 차며 실패와 화해를 배우는 ‘회복 탄력성’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모든 아이가 운동장에서 빛날 수 있도록 입법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0년 전만 해도 학교 담장 너머로 터져 나오던 아이들의 함성은 동네의 살아있는 활기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소중한 생동감을 ‘소음’으로, 교사의 헌신을 ‘치안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공을 차고, 때로는 넘어지고 다투며 화해를 배우는 과정은 국영수 문제집 한 권보다 아이들의 인생에 더 큰 ‘자양분’이다. 천 원내대표가 제안한 제도적 방어막은 단순히 교사 개인의 보호를 넘어, 무너진 교육 공동체를 복원하는 토대다. 벼랑 끝에 몰린 ‘학교체육’을 구출하고, 아이들에게서 빼앗긴 ‘성장의 소음’을 되찾아주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일은 곧 무너진 교육의 본질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적막에 갇힌 운동장에 다시 축구공 튀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을까. 고사 위기에 처한 ‘학교체육’의 부활을 위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함성에 응답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