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일정으로 항공권을 예매하려다 치솟은 운임에 잠시 멈칫했다. 미국과 이란의 물리적 충돌이 빚어낸 여파다. 일순간 세상이 멈출 듯했던 초기의 패닉은 가라앉았지만, 수면 아래의 진짜 위기는 이렇게 체감 가능한 숫자가 되어 다가온다.
거시경제 분석가와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동의 주요 원유 인프라가 입은 물리적 타격이 단발성 충격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공급망의 훼손이 쉽게 복구되지 않는 한, 고유가는 오랜 기조로 굳을 수 있다는 경고다. 어쩌면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고비용 뉴노멀’이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경제적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운영의 틀을 바꾸며 버텨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 클래식 공연계도 단순히 허리띠만 졸라맨 것이 아니었다. 영국은 대규모 장거리 순회공연의 부담이 커지자, 이미 구축된 지역 순회망과 중소 규모 공연장을 활용해 공연 접근성을 유지하려 했다. 일부 오케스트라는 방송과 영화음악 같은 상업적 활동으로 수입원과 대중적 접점을 넓히며 고유가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응했다.
미국의 대형 예술단체는 적자와 파업, 시즌 축소를 겪으면서도 정부 기금과 재단, 민간 모금을 엮어 재원을 다변화했고, 재무 구조도 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손질했다. 일본에서는 기업 후원과 방송사에 기대던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스폰서 이탈 뒤 시민 회원제와 비영리 조직을 바탕으로 악단을 재건한 일본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많은 예술단체는 예술적 탁월성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육과 지역사회 속에서 존재 이유를 다시 설명해야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또한 비슷한 교훈을 남겼다. 일부 단체는 시즌을 줄이거나 문을 닫았지만, 많은 기관은 할인 티켓과 교육 프로그램, 지역사회 연계를 확대하며 관객과의 거리를 다시 좁혔다. 후원을 한두 곳에 기대기보다 여러 재원을 묶고, 화려한 외연 확장보다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먼저 따지는 쪽으로 체질을 바꾼 것이다. 위기 때마다 살아남은 곳은 가장 큰 기관이라기보다, 왜 이 음악이 공동체에 필요한지 설득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한국 클래식계도 이제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비용 충격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대규모 인원과 화물이 함께 움직이는 해외 명문 악단의 내한 공연이다. 100여 명이 동시에 이동하는 항공료와 악기 운송비까지 함께 오르면 부담은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시장은 고가 티켓을 감수하는 관객층과 후원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버틸 여지가 있다. 더 취약한 쪽은 지역 공연장과 상설 기획이다. 운영비가 오르는 가운데 한정된 예산이 화제성 높은 이벤트로 쏠리면, 이들은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뒤로 밀리기 쉽고 기본적인 시즌 프로그램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뚜렷한 해법이 당장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영의 관점을 바꿔볼 필요는 있다. 여러 공연장이 한 팀의 내한 일정을 나눠 비용을 분산하고, 체류 기간에는 리사이틀과 실내악,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묶어 한 번의 초청으로 여러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대편성 내한 일변도에서 벗어나 국내 악단과 소규모 앙상블, 지역 정기 시리즈에 예산을 더 안정적으로 배분하는 일도 중요하다. 몇몇 대형 공연이 살아남는다고 해서 생태계 전체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치솟는 기름값이 곧바로 클래식을 멈추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다음 시즌의 포스터 속 내용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채워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 변화가 단순한 축소의 신호가 될지, 아니면 더 단단한 구조로 건너가는 계기가 될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상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