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다 1억 뛰었다”…서울 전세, 결국 ‘속도’가 갈랐다

전세 매물 1년 새 45.4% 감소…선택지 자체가 사라지는 시장
갱신 계약 51.4% 돌파…신규 공급 막히며 거래 속도 경쟁 심화
전월세 동반 상승 압박…망설일수록 더 비싼 조건 떠안는 구조

“망설이다 1억 뛰었다”

 

서울 아파트 전세 공급 축소와 계약 경쟁 심화로 세입자들의 체감 주거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출근길 지하철 안. 휴대전화로 전세 매물을 보던 30대 A씨는 화면을 몇 번이고 넘겼다. 어제까지 있던 집이 사라졌다. 빈 목록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이 나왔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닌 순간이었다. 서울 전세 시장에서는 결국 ‘속도’가 결과를 갈랐다.

 

22일 기준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공인중개사 등록 매물 기준)’에 따르면 4월 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5389건이다. 1년 전 2만8139건과 비교하면 45.4% 감소했다. 1년 사이 선택지 절반 가까이가 시장에서 사라진 셈이다.

 

같은 단지를 두고 상의하는 사이, 남아 있던 집마저 다른 사람의 계약금으로 넘어간다. 이제는 조건이 아니라 ‘속도’가 계약을 결정한다.

 

◆전세 매물 45.4% 감소…‘고를 수 있는 폭’이 줄었다

 

현재 전세 시장의 핵심은 가격 상승이 아닌 공급 축소다. 매물이 줄어든 수준을 넘어, 실제로 고를 수 있는 폭 자체가 크게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성북구 전세 매물은 1년 새 1191건에서 136건으로 88.6% 급감했다. 중랑구(-85.4%), 노원구(-83.8%) 등 실거주 수요가 집중된 지역일수록 감소 폭이 컸다.

 

반면 강남구(-22.3%)는 상대적으로 낙폭이 제한적이었다. 문제는 ‘비싸다’가 아니라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격 협상” 사라졌다…남은 집이 가격 만든다

 

매물이 사라진 시장에서는 협상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현장에서는 가격 조율 대신 “지금 바로 계약금을 넣을 수 있느냐”가 거래 기준이 됐다.

 

“이제는 집을 보고 고민할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계약금을 넣는 사람이 가져갑니다.”

 

성북구 길음래미안1차 전용 59㎡는 4월 15일 6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불과 2주 전 5억2000만원에서 1억1000만원 오른 수준이다.

 

가격이 거래를 만드는 시장이 아니라, 남은 물건이 가격을 만드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임대차 구조의 변화에서 시작됐다. 고금리 환경과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이동을 미루는 수요가 늘면서, 시장에 나오는 신규 매물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기존 세입자가 눌러앉는 흐름이 강화될수록 신규 진입자의 문턱은 더 높아진다.

 

◆갱신 계약 51.4%…시장에 집이 안 나온다

 

국토교통부 임대차 신고 자료에 따르면 2026년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중 갱신 계약 비중은 51.4%를 기록했다. 2023년 30%대 수준에서 2년 만에 20%p 이상 늘며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시장 유동성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실제 체감 난이도는 통계보다 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전세 공급 부족은 월세 시장까지 밀어 올리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월 둘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7% 상승하며 1년 이상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 매물 급감으로 서울 주요 지역 공인중개사무소 앞 상담 대기 수요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게티이미지

2026년 3월 누적 기준 전세는 0.56%, 월세는 0.60% 상승하며 임차인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흐름이다. 전세에서 밀려난 수요가 월세를 자극하고, 다시 그 부담이 전세 수요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고민을 멈추고 모바일 뱅킹 앱을 연다. 더 비싼 선택지밖에 남지 않기 전에, 남아 있는 집을 잡기 위해서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선택지는 더 줄어든다. 지금 시장에서 가격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