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농축시설' 北구성…"원심분리기 200∼300개" 관측도

구성 핵시설, '용덕동', '방현 기지'로도 불려…주로 고폭실험장으로 알려져
정동영 언급에 美이 대북정보공유 일부 제한으로 반발해 사실상 공식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고 밝힌 북한 평안북도 구성시(市)는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핵시설 소재지로 의심받던 곳이다.

정 장관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언급하고 미국이 이에 반발해 대북 정보공유 일부 제한 조치를 취함에 따라 구성은 영변, 강선에 이어 제3의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사실상 공식화된 셈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우라늄 농축시설은 채광한 우라늄을 원심분리기로 고속 회전시켜 천연 우라늄에선 0.7%만 존재하는 핵분열 물질인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여 원자력 발전소 연료(2~5%)나 무기급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하는 곳이다.



핵무기는 우라늄-235 비율 90% 이상인 고농축우라늄을 원료로 제조할 수도 있지만, 우라늄 핵연료를 원자력 발전에 쓰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분리한 플루토늄으로도 만들 수도 있다.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서는 원자로가 필요하나, 고농축우라늄은 원심분리기를 지하시설에 가져다놓고 생산할 수 있어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간 공식적으로 확인된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평안북도 영변과 남포시 강선뿐이었다.

북한의 대표적인 핵단지 영변에는 우라늄 농축시설 외에도 원자로, 핵연료봉 생산 시설, 폐연료봉 저장소, 플루토늄 생산시설 등을 갖췄다.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2010년 영변을 방문해 농축시설에 원심분리기 약 2천개가 있었다고 국제사회에 알린 바 있다.

헤커 박사는 2021년 언론 인터뷰에서 영변의 농축시설 건물이 2013년 2배로 증축된 사실을 바탕으로 원심분리기 4천개 정도가 가동 중일 것으로 추측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영변의 원심분리기가 6천700개로 추정하기도 했다.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영변에 농축시설로 추정되는 새 건물도 완공됐다고 보고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위성사진을 근거로 새 시설이 완공된 것으로 평가했다. 영변의 핵농축 능력이 더욱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선은 북한이 IAEA에 핵시설로 신고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당국과 국제사회가 농축시설 소재지로 확인한 곳이다.

강선의 우라늄 농축시설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지만,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2018년 복수의 당국자가 전한 국방정보국(DIA) 보고서 내용을 인용해 강선의 원심분리기가 "영변의 2배"인 "약 1만2천개"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2024년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물질 생산시설 현지지도 형식으로 우라늄 농축시설 내부를 최초로 공개했는데, 국가정보원과 IAEA는 이곳을 강선으로 추정했다.

일본 전문가 등은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을 바탕으로 강선의 원심분리기가 최대 6천500개로 보인다고 짐작했다.

이에 비해 정 장관이 언급한 구성은 한미 당국과 IAEA가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공식 확인한 곳은 아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핵단지 영변에서 북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구성시는 '전략적 요충지'로 '국방상 주요한 위치'에 있다.

과거 구성은 '용덕동', '방현 기지', '장군대산(山)' 등의 지역명으로도 불리며 주로 고폭(高爆) 실험장으로 알려졌고, 핵물질 저장소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구성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는 의혹도 본격 제기됐다.

우라늄 농축시설 가능성이 직접 거론된 대표적인 공개 정보는 미국 싱크탱크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2016년 7월 보고서다.

미국이 정 장관의 '구성 농축시설' 발언을 문제 삼아 정보 공유를 제한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정 장관과 통일부가 정보기관 간 공유된 기밀정보가 아니라 '공개 정보'를 통해 인지한 내용이라며 예로 든 것이 바로 이 보고서다.

ISIS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정통한 정부 전문가'를 인용해 구성시 방현 공군기지 및 공장 일대가 '원심분리기 시설 후보지'라며, 원심분리기 200∼300개가 설치돼 있을 가능성을 전했다. 방현 기지의 위성사진 등도 함께 제시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로 유명한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과 인터뷰에서 '용덕동 지하 핵시설'이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 활동에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을 소개한 바 있다.

다만 지난해 CSIS 보고서 등은 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용덕동을 고폭 실험시설 기능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구성이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라는 의혹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돼온 것은 사실이나, 한미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의혹이나 추정을 넘어 구성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고 공식 석상에서 단정적으로 표현했고, 미국이 이에 반발해 대북 정보공유 일부 제한 조치를 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구성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는 것이 사실상 공식화된 셈이다.

정 장관은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도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영변에 한 군데 더 짓고 있으며, 구성과 강선에도 있다"며, 전부 "네 곳"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는 후보자 신분이었고, 큰 논란이 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국회 외통위에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의 보고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지금 영변과 구성, 강선에 있는 농축시설"이라고 확정적으로 발언했는데, 실제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에 구성은 등장하지 않았다. 정 장관의 언급은 정부 고위 당국자로서 구성을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공개 석상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미국은 정 장관의 전후 언급 내용, 구체적인 표현 등을 볼 때 한미 공유 정보를 발설했다고 판단, 항의성으로 일부 대북정보공유 제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미국의 문제 제기 후 통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벌인 보안조사 결과 정 장관이 미국과 공유된 정보를 누설하지는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