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항소심에서 징역 4년으로 대폭 감형받았다. 재판부는 “모든 상해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지만,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고, 큰소리로 항의하며 소란을 빚었다. 유족 측 변호사는 “이 정도 규모의 사건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있느냐”며 “국민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수원고법 형사1부(고법판사 신현일)는 22일 박 대표 등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산업재해치사)·파견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처럼 선고했다.
박 대표는 일차전지업체 공장화재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돼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박 대표에게 내려진 징역 15년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기소된 사건에서 최고 형량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해당 화재 이틀 전 폭발사고가 나 전조증상이 있었음에도 발열 전지에 대한 위험성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후속 공정을 계속했다”며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는 점에서 책임이 매우 중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일부 피해자 유족들이 처벌을 탄원하고 있으나 피고인들이 모든 상해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순관이 아들에게 아리셀 업무 중 상당 부분을 맡긴 이유에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중처법이나 파견법상 책임을 면탈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의 아들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도 징역 15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7년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처럼 큰 폭의 감형이 이뤄진 데는 ‘양형부당’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형량이 70~80%씩 삭감됐다.
항소심에서는 박 대표가 중처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지도 핵심 쟁점이었다. 박 대표 측은 명목상 대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으나 1심에 이어 2심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과 합의’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재판부는 “합의한 일부 피해자 유족이 처벌을 탄원하고 있으나 이를 이유로 합의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면 피고인의 피해회복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거나 이를 포기하게 만들어 오히려 피해자들의 충분한 피해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1심 재판부는 “기업가가 근로자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에는 비용을 최소화해 이윤을 극대화해 오다가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유족은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에 이르게 돼 결국 기업가가 선처받는 선례가 많다”며 항소심과 정반대로 판단한 바 있다.
유족들은 판결 직후 재판장을 향해 “우리 가족 살려내라”며 고함치고 울부짖었다. 한 유족은 “너무 억울해서 말이 안 나온다. 우리에게 죽으라는 것과 똑같다”며 “판사는 자식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다른 유족도 “23명이 죽었고 사고 이틀 전에도 불이 났다. 법원이 인재인 것을 인정하면서 4년을 선고하는 것이 말이 되는 판결이냐. 다시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유족 측 법률 대리를 맡은 신하나 변호사는 이날 항소심 선고 직후 수원고법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까지 중처법이 작동되지 않은 것은 너무 낮은 형량 때문이었는데, 이 사건이 정점을 찍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조인의 편협한 시각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족과 합의했다는 이유로 양형에 중대하게 반영했는데, 내가 (기업) 회장이라도 안전보건 업무에 돈을 쓰지 않고 생계가 막막한 유족이랑 합의하겠다”며 “합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이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재판부가 처음부터 심증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상고심에서 양형부당, 법리 오해를 바로잡겠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아리셀 공장화재는 2024년 6월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에 있는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발생한 사고다. 작업 중이던 23명(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다.
수사 결과 아리셀은 소방훈련 미실시 등 전반적 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고위험 공정에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파견받아 투입한 사실도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