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우리는 왜 달리는가

그럴듯한 성취 없어도 달리는 그 자체가 좋아
결과 넘어선 충만함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

요즘 나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거의 매일 뛴다. 퇴근하면 늦은 밤이라, 특별한 목적을 두고 약속을 잡기도 어렵다. 그래도 러닝머신 위를 달릴 정도의 여유는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혼자 뛰다 보니, 그 모습을 눈여겨본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같은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하는 어떤 이가 내게 물었다. “체중은 좀 줄었어요?” 내가 살을 빼려고 뛴다고 여긴 듯했다. 나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뱃살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어르신 한 분은 그렇게 뛰면 건강해지고 더 오래 살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살을 빼기 위해 뛰는 것이 아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 1초도 수명이 늘지 않는다 해도, 달리기는 내게 소중한 활동이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내가 정신과 의사이니, 누군가는 “행복해지려고 뛰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환자들에게는 “뛰면 집중력도 좋아지고, 우울증도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웬만한 심리상담이나 약보다 효과가 더 좋으니, 꼭 활용하라고 강조한다. 나도 느낀다. 생각이 명료해지고, 불안한 마음도 뛰고 나면 어느새 사라진다. 잠도 잘 온다. 달리기의 효과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행복해지기 위해 뜁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도 세속적인 인간인지라 기록에 욕심이 날 때가 있다. 보스턴 마라톤 참가 자격을 획득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희망도 품고 있다. 유명인이 세계 7대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기사를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내 달리기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행복해지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뛴단 말인가? 이득이 하나도 없다면 달릴 필요가 있는가? 미래에 날씬해져 있고, 더 오래 살기 위한 수단으로만 달리기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나는 그저 달리는 그 자체가 좋고, 달리는 그 순간이 좋다. 달리다 보면 말로 묘사하기 힘든 순수한 황홀감이 찾아온다. 그럴듯한 결과물이 없어도 된다. 남들에게 보여줄 성취가 없어도 괜찮다. 내 몸으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현실에서 나는 온전한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가 어렵다. 사회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참아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달릴 때는 다르다. 몸의 리듬과 호흡에 마음이 맞춰진다. 달리기와 내가 하나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느낀다. 나 자신을 되찾는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면 곧바로 묻는다. “그래서 남는 게 뭔데요? 그게 무슨 도움이 되나요?” 건강에 좋은가, 성공에 보탬이 되는가, 행복을 가져다주는가를 따진다. 잘못된 질문은 아니다. 문제는 삶의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평가할 때 생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자기 삶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면, 인생이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세상만사가 혼란스러울수록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 비록 아무런 목적을 충족시켜 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사랑스러운 것들로 삶을 채우고,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지켜야 한다. 쓸모를 넘어선 기쁨, 결과를 넘어선 충만함이야말로 어지러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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