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영 스포츠 아나운서 “아이들 보기만 해도 행복… 육아·일 다 해낼 것” [차 한잔 나누며]

현장 리포팅 등 간판으로 맹활약
2024년 쌍둥이 출산 후 삶에 변화
“과거 큰 관심 부담… 그립지 않아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포기 못해”
플로리스트 등 멀티 워킹맘 변신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내 인생의 운을 여기에 다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느낌이에요.”
정인영 아나운서가 지난 10일 인천 남동구의 한 카페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4년 5월 쌍둥이를 출산한 정인영 아나운서는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통해 후배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싶다고 역설했다. 인천=이제원 선임기자

지난 10일 인천 남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인영(41) 스포츠 아나운서는 육아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야구 여신’, ‘라리가 여신’ 등 수식어와 함께 화려한 시절을 보낸 정 아나운서지만, 이란성 쌍둥이 하랑이와 하율이를 키우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2011년 10월 KBSN스포츠에 입사한 정 아나운서는 현장 리포팅,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축구 관련 콘텐츠 등을 소화하며 동기인 윤태진 아나운서와 간판으로 활약했다. 진행 능력뿐 아니라 175㎝가 넘는 큰 신장에 늘씬한 외모로도 주목받았다. 남성잡지 ‘맥심’의 표지 모델(2014년 1월호)도 됐는데, 맥심 역사상 첫 전량 매진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인생에 변화가 온 것은 쌍둥이가 태어난 2024년 5월. 화려했던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을까.

 

“사실 그립진 않아요. 그땐 관심이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방송에서 보면 외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극I’라고 할 정도로 내성적이거든요.”

 

“제일 예뻤던 시기의 모습들을 남길 수 있어서 고맙다는 감정”과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엄마가 젊었을 땐 이랬어’라고 보여줄 수도 있다”는 정도의 감정만 남았다고 한다.

정인영 스포츠 아나운서. /2026.04.10 이제원 선임기자

아이들을 낳고 육아에 집중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경단녀’(경력 단절여성)가 됐다. 복귀 전까지는 다시는 스포츠 관련 일을 못 할 것이라는 생각에 정 아나운서 역시 불안하고 막막했다.

 

“시청자들이 진짜 궁금해할 것들을 기왕이면 더 어리고 예쁜 후배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물어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죠. ‘아, 이제 나는 스포츠 관련해서는 할 게 없는 걸까’라는 생각에 평소 관심이 있었던 플로리스트나 다른 일도 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놓을 순 없더라고요.”

 

다행히 지난해 야구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육아와 방송, 플로리스트 일을 모두 하는 멀티 워킹맘이 됐다.

 

화려한 복귀 같지만 그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의 여성 아나운서들은 화려한 화면과 달리 계약 기간 만료 시 회사를 떠나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고용 불안’이 늘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정 아나운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KBSN스포츠에서 보여준 4년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2015년 회사를 퇴사해야 했다.

정인영 스포츠 아나운서. /2026.04.10 이제원 선임기자

“미국 메이저리그나 NBA를 보면 중년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멋지게 활동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당시 스포츠 심리학 공부도 하며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충격과 멘붕”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4년의 시간을 발판으로, 프리랜서로 활약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에 대해 다른 시각도 제시했다. “스포츠 아나운서로 일하고 싶은 친구도 있지만, 경험을 쌓거나 다른 길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출산 이후 ‘워킹맘’으로서의 삶은 또 다른 과제였다. 제도적 지원이 늘고는 있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현실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가 찾은 해법은 ‘연대’였다.

정인영 스포츠 아나운서. /2026.04.10 이제원 선임기자

“플로리스트로 수강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 일로 갑자기 자리를 비워야 할 때도 있어요. 다행히 대표님도 워킹맘이라 그 상황을 잘 이해해주세요. 결국 워킹맘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빈자리를 채워주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아요.”

 

여전히 외모가 먼저 소비되는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세계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는 경력 단절의 시작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공식을 깨고 싶다고 했다.

 

“제가 육아를 하면서도 스포츠 일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후배들도 그 길을 덜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아요.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그런 마음으로 계속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