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환율이 치솟으면서 국내 석탄 및 석유제품 가격이 31.9% 올랐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생산자물가지수도 약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이달 들어 국제유가가 다소 진정됐지만 누적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4월 생산자물가에도 반영될 전망이다.
◆나프타 68%, 에틸렌 60% 폭등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석탄 및 석유제품 가격이 2월보다 31.9% 올라 1997년 12월(57.7%) 이후 28년3개월 만에 가장 크게 상승했다. 석탄·석유제품 가격은 올해 1월 3.8% 하락 후 2월 4% 상승하는 등 지난해부터 한 자릿수로 오르내리다가 지난달에는 30% 넘게 급등했다. 원유가 원재료인 화학제품도 전달보다 6.7% 올랐다.
석탄·석유제품, 화학 제품, 반도체 가격 등이 뛰면서 생산자물가지수(잠정)도 125.24(2020년 수준 100)로, 전월(123.28)보다 1.6%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4월(1.6%)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9월 이후 7개월 연속 오름세다.
생산자물가지수는 국내 생산자가 국내에 공급하는 상품·서비스 가격변동을 측정하는데 올해 890개 품목이 조사 대상이다. 수입품 가격은 포함되지 않는다. 생산자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전이된다. 품목의 성격에 따라 바로 가격에 반영되기도 하나 3∼4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밀어올리기도 한다.
이문희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4월 들어서 현재까지 평균 유가는 전월 평균보다 하락했지만 3월 이전 상승했던 원자재 가격의 영향이 점차 파급될 것”이라며 “이는 생산자 물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국·이란 종전 협상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서 앞으로의 흐름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팀장은 “생산자물가가 7개월째 오름세를 지속했고, 3월에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소비자물가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세부 품목 가격을 보면 나프타(68.0%), 경유(20.8%), 에틸렌(60.5%), 자일렌(33.5%) 등이 급등했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컴퓨터기억장치(101.4%), D램(18.9%) 등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농림수산품은 3.3%, 전력·가스·수도 및 폐기물은 0.1% 각각 하락했고 서비스는 보합이었다.
국내 생산분 외에 국내에 수입되는 상품·서비스까지 포함해 가격 변동을 측정한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전월보다 2.3% 상승했다. 국내 출하분과 수출품을 합산해 국내생산품의 가격 변동을 파악하는 3월 총산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4.7% 상승했다. 농림수산품이 3.0% 내렸으나 공산품이 7.9% 올랐다.
◆코스피 뛰자 빚투도 최대치
미국·이란의 2차 휴전협상 불발에도 코스피는 22일 사상 처음 6400선을 돌파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전쟁 이전의 상승세를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이다. 투자 열기가 고조되자 ‘빚투(빚내서 투자)’ 규모가 역대 최대치로 치솟는 등 경고음도 감지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2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29.46포인트(0.46%) 오른 6417.93에 거래를 마치며 전날 기록한 역대 최고 종가를 뛰어넘었다. 지수는 전장보다 0.90포인트(0.01%) 내린 6387.57로 출발한 뒤 6400선을 돌파했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장중 한때 6423.29까지 치솟기도 했다. 전날 코스피는 2.72% 급등한 6388.47에 거래를 마치며 전쟁 직전 기록한 종가·장중 기준 사상 최고치를 약 2개월 만에 동시에 뛰어넘은 바 있다.
코스피를 주도하는 삼성전자(-0.68%), SK하이닉스(-0.08%) 등 대형 반도체주들이 잠시 숨을 골랐지만, 조선·이차전지·방산주 등이 지수를 밀어올렸다. 특히 HD현대중공업(+11.28%)의 상승세가 돋보였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데이터센터에 6271억원 규모의 발전 설비를 공급하고, 국내 최초로 해외쇄빙선 수주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등했다. HD한국조선해양(+8.30%) 역시 큰 폭으로 올랐다. LG에너지솔루션(+1.36%), 삼성SDI(+2.17%) 등 이차전지주도 메르세데스-벤츠와 협력 기대감 등으로 상승했다.
국내 증시가 전쟁 이전의 성장세를 회복하자 다소 잠잠했던 빚투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국내외 증권가, 투자은행(IB)이 코스피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4조2592억원으로 집계됐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스피 성장과 함께 빠르게 늘어난 신용거래 잔액은 전쟁 발발 이후 31조원대로 떨어졌으나, 점차 반등해 17일 34조원을 처음 넘어섰다.
이에 증권사들은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KB증권은 21일 오전 9시부터 SK하이닉스에 대한 차액결제거래(CFD) 신규 매수를 차단했다. 차액결제거래는 실제로는 투자 상품을 보유하지 않았으면서 차후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만 정산하는 고위험 레버리지 장외파생상품이다. 미래에셋증권도 22일부터 일부 종목의 증거금률과 종목군을 변경·적용했다. 알테오젠, 하이브, 카카오, LG에너지솔루션 등 20개 종목의 종목군을 ‘E’에서 ‘F’로 바꾸고, 하나마이크론, 대덕전자 등 10개 종목의 증거금률은 기존 30∼40%에서 100%로 올렸다. 위탁증거금 100% 종목 또는 F군 종목은 신규 융자 및 만기 연장 등이 제한된다.
토스증권도 일부 종목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고 카카오페이증권은 신융융자 매수 주문을 중단했다.
시장 일각에선 코스피 단기 과열에 대한 경계심도 만만치 않다. 공매도 대기자금 성격인 주식 대차거래 잔고가 21일 기준 165조4182억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차거래는 투자자가 다른 투자자에게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주식을 빌려주는 거래로, 통상 공매도의 선행 지표로 여겨진다. 대차거래 잔고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자금이 늘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