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기 평택시 삼성반도체 평택캠퍼스 앞에서 삼성전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단체행동이 진행됐다. 삼성전자 첫 과반 노동조합인 초기업노조가 주최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조합원 4만명은 왕복 6∼8차선 도로 1㎞가량을 가득 메웠다. 검은색 조끼를 입고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감싼 조합원들은 사측에 성과급 산정 체계 투명화와 상한선 폐지를 촉구했다.
이날 열린 결의대회에 주최 측 추산 4만여명(경찰 추산 약 3만4000명·오후 2시 기준)이 몰렸다. 초기업노조 전체 조합원 7만6000여명의 절반이 넘고, 2024년 첫 파업 결의대회(4000명)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당초 노조는 경찰에 집회 참가 인원 3만명을 신고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조합원이 집단행동에 참여했다. 삼성전자는 공문을 보내 필수 인력 근무를 당부했지만 노조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조합원은 “우리 사업장은 두 명 빼고 다 나온 거로 알고 있다”며 “사측이 협상보단 언론 등 여론 형성에 더 주력하는 거로 보인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게 사내 여론”이라고 말했다. 다른 직원도 “인력 유출이 눈에 보일 정도고 경쟁사 이직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직원들 사기가 떨어지는데도 변변찮은 회사 대응에 불만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분배가 성장 족쇄 될까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데, 평택 사업장이 문을 닫으면 가격 상승 압박이 커져 반도체 관련 산업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지난달 기준 한국 수출의 38.1%를 담당하는 반도체 산업이 휘청이면 국가 경제 피해도 불가피하다.
노조가 성장 과실을 독점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는 노동과 기술이 집약된 산업인 만큼 기업 실적을 노동의 성과로 단순히 직결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성과도 분명하지만 57조원이라는 이익 규모 자체는 수십년간 축적된 자본과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5년간 R&D에 148조원을 쏟아부었고, 같은 기간 DS 부문 시설에 연간 40조∼50조원을 투입했다.
올해 AI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110조원 이상의 최대 규모 투자를 집행할 방침인데, 노조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경영 불확실성도 커졌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도체는 설비사업이고, 지속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며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은 R&D 성과라기보단 AI 산업 확대 등 외부 요인이 컸다. 무리한 성과급을 요구하기보단 R&D 등 미래에 투자하는 게 상생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사측과 합의하지 못하면 다음 달 21일부터 6월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연간 영업이익 300조원을 기준으로 하루 1조원씩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