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란에서 탈출해 한국에서 지내고 있던 이도희 이란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이 태국으로 출국한다. 26일부터 30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2026 아시아배구연맹(AVC)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란 대표로 출전하는 메흐레간 누어 클럽(MEHREGAN NOOR CLUB)의 사령탑을 맡기 위함이다.
이도희 감독은 24일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태국으로 출국해 현지에서 이란 선수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도희 감독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전면적으로 치닫자 현지에서 탈출해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육로로 이동한 뒤 튀르키예를 거쳐 지난 3월5일 인천공항으로 무사히 귀국한 바 있다.
귀국해 V리그 관전, 경일고 배구단 창단 행사 참석 등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이도희 감독에게 이란배구협회에서 최근 연락이 왔다. 2026 아시아배구연맹(AVC) 여자 챔피언스리그에 메흐레간 누어 클럽이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여자 선수들은 전쟁 중인 상황에서도 테헤란에서 벗어나 최근 열흘 가량 훈련을 이어갔다. 이도희 감독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저도 훈련 중인 선수들에게 각종 프로그램을 주면서 지휘했고,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태국으로 가게 됐다”면서 “한창 지도했던 선수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고맙다. 이란 현지 상황이 힘든데도 이란배구협회가 국제대회 참가를 결정하는 것을 보면서 배구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도희 감독은 지난 2024년 6월, 이란 여자배구 청소년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고, 지난해 6월엔 여자배구 대표팀 사령탑까지 맡으며 청소년부터 성인배구 대표팀까지 총괄하게 됐다. 이도희 감독 부임 후 이란 여자배구의 경기력은 급상승했고, 이도희 감독이 이끄는 이란 여자 대표팀은 지난해 10월 중앙아시아 여자 챔피언십에서 62년 만의 우승을 일궈냈다.
이란은 남자 배구에서는 아시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다. 이란 여자배구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이도희 감독은 “이란에서는 배구의 인기가 굉장히 높다. 축구와 배구, 농구를 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여자 선수들은 농구보다 배구를 선호한다. 그래서 배구만 보면 남자보다 여자 선수들이 더 많을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엘리트 배구가 아니라 클럽 배구 수준이다 보니 이도희 감독이 부임한 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전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도희 감독은 “클럽 배구를 하는 선수들이다 보니 기본기나 테크닉적인 부분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신장 등 체격적 조건이 좋고, 순발력이나 점프력 등 운동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꽤 많아서 기본기만 잘 가르치면 아시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클럽 대회를 마친 뒤에도 이도희 감독의 이란 배구 지도는 계속 된다. 이도희 감독은 6월 필리핀 캔돈에서 열리는 AVC컵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도희 감독은 “6월 AVC컵에서 4강에 들면 이란 배구협회에서 9월에 열리는 나고야 아시안게임에도 보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전엔 메달권이 아니다보니 이란배구협회에서 여자배구는 아시안게임을 안 보내줬다고 하더라. AVC컵에서 선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 박기원 감독이 아시아에서 변방이었던 이란 남자배구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이제는 이도희 감독이 이란 여자배구의 대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도희 감독은 “박기원 감독님이 이란 남자배구를 4년 간 지도했다고 하시더라. 저도 4년 정도 이란 여자배구를 제대로 키워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현대건설의 사령탑을 맡았던 이도희 감독은 최근 FA 자격을 얻어 최고 연봉을 보장받으며 잔류한 김다인을 보며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2017~2018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은 김다인은 이도희 감독이 직접 뽑은 선수다. 데뷔 후 세 시즌 간은 이다영에게 밀려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길었지만, 이도희 감독은 김다인이 경기를 뛰지 못하던 시기에도 강훈련을 시키며 국가대표 주전 세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줬다.
이도희 감독은 “원래는 선수들이 부담스러울까봐 연락을 잘 안하는데, 이번엔 다인이의 계약을 보면서 왠지 뿌듯했다. 같은 세터라서 더 마음이 가서 연락을 했다. 다인이가 정말 잘 성장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인이와 통화하면서 느낀 건 지금도 국가대표 주전 세터지만, 더 성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V리그에서는 이미 최고의 세터인 만큼 국제대회를 통해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 역시 현역 때 국제대회를 뛰면서 더욱 기량이 늘고 눈이 트인 경험이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