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영리하고도 교활한 말 가운데 하나”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믿을 구석’이라. ‘믿음’이라는 단어와 ‘구석’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은 어딘가 언밸런스한 느낌이 들었다. 믿음이라는 말이 긍정적이고 따뜻한 이미지라면 ‘꺾여 돌아간 곳의 안쪽 공간’을 의미하는 구석이라는 단어에는 마냥 밝은 이미지만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 소설가 손원평은 지난해 다른 작가들과 함께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게 되면서 도서전의 테마인 ‘믿을 구석’이라는 말을 음미했다. 구석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야기를 약간 뒤틀어보자고 생각했다.

손원평. ⓒ씨네21 오계옥. 창비 제공

거의 모든 것이 연결돼 있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믿을 구석을 가지고 있을 텐데. 사회를 살아가면서 좀 의지도 하고 의탁하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에서 믿을 구석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 사이의 믿음, 신용?

 

생각해보면, 믿음이나 신용이라는 것도 얇고 아슬아슬하게 연결돼 있는 건 아닐까. 얼싸안고 어깨동무하는 관계가 아닌 손끝만 잡고 있는 관계, 언제든 손을 놓는 순간 완전한 타인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닐까. ‘손절’이라는 말이 유행이 된 것처럼, 뭔가 안 맞거나 틀리거나 더 이상 유용하지 않으면 손끝만 놔버리면 끝나는….

 

손원평은 서로가 서로에게 믿을 구석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한 순간 균열이 생기면 급격히 허물어지는 자본주의적 관계를 묘파한 단편소설 「당신의 손끝」을 발표할 수 있었다.

 

소설에선 문화센터에서 일하는 미술 강사 ‘효원’의 믿을 구석은 부유한 수강생 ‘주영’이고, ‘세탁소 할아버지’의 믿을 구석은 자신만의 화실을 열고 싶어 하는 ‘효원’이다. 효원은 자신을 열렬히 신뢰하고 응원하는 주영 덕분에 폐강 직전의 강좌를 지키고 자신만의 화실을 마련할 꿈을 꾼다. 하지만 친밀하다고 믿었던 둘의 관계는 계약과 소비의 논리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효원은 비로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는 건 실은 허약한 이해관계였음을 깨닫게 된다. 급기야 효원에게 시작된 믿을 구석의 붕괴는 세탁소 할아버지의 믿을 구석 붕괴로 이어지는데.

 

“‘약속했잖아요, 맘 안 바꾼다고. 잘못될 일 없다고. 내가 아가씨 하나 믿는다고 그렇게 애길 했잖아요….이 낡은 가게에 이제 누가 또 들어와요. 우리 손주놈은 이제 어쩌라고. 그애 꿈은 오직 당신 손끝에 달려 있는데!’ 울다시피 소리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효원은 아득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아버린 현실이 참혹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돼 있는 걸까. 우정이라고 생각했던 건 허약하디허약한 계약관계일 뿐이었다.”(34쪽)

 

손원평 작가가 문제작 「당신의 손끝」을 비롯해 단편 10편을 엮는 두 번째 소설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열편의 단편에는 문화센터와 호텔, 공부방, 명품 매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톱니바퀴 위에서 끊임없이 마모돼가는 현대인의 다채로운 표정이 담겨 있다. 소설집을 펼치면 해치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끝내는 누군가를 밀어내고 상처 입히게 되는 세계, 악인은 없지만 누구도 온전히 결백할 수 없는 세계가 선연히 펼쳐진다.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제목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사과도 아니고 변명도 아닌 어정쩡한 말로, 누군가 분명 피해를 봤지만 세상이 원래 그렇지 않느냐는 듯 책임을 회피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어쩌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영리하고도 교활한 언어 중 하나일지 모른다”며 “악인은 없지만 누구도 결백하지 않은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비릿한 씁쓸함이 산뜻하게 표백돼 예의 바른 존대어로 발화되고도 왜인지 계속 뇌리를 멤돈다”고 적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뒤집어씌운 일들을 함축하는 문장쯤 되겠다.

젊은 작가 손원평은 왜 자본주의 사회를 그려야 했을까. 그가 묘파한 후기 자본주의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여정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손 작가를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서둘러 만났다.

 

―「당신의 손끝」의 효원과 주영 모두 문제적 인물인데.

 

“아마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저는 인간에게 한 면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몸만 봐도 앞모습과 옆모습, 뒷모습, 45도에서 본 모습 등 여러 면이 있다. 후기 자본주의는 사랑이나 감정, 이미지 등 자본 안에 포섭될 수 없던 것까지도 속속들이 자본이 뻗쳐나간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주영을 이 시대의 대표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했다. 주영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소비를 하고 자신이 편하니까 강사 효원에게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한 푼의 납입이 없으면 깨어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이 낸 돈의 가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많이 따진다. 어떤 가게에 단골로 가다가도 어느 순간 안 맞으면 그냥 발길을 끊는데,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겪고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단편 「통행증은 마스크」는 팬데믹이라는 시기를 배경으로 연예부 수습기자 선미의 하루를 통해 생존의 압박 앞에서 인간 윤리와 존엄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선미는 타인을 손쉽게 심판하는 사회를 경멸하면서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다.

 

“모두가 살아 있는 감옥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짜증과 증오와 혐오를 마스크 아래 가려버리면 되니 참으로 편리한 건지도 몰랐다. 도덕과 비도덕, 논리와 비논리, 상식과 비상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모호했다. 불평하는 대신 그 점을 이용하는 자들이 언제나처럼 승자가 될 것이었다. 이왕이면 그쪽에 속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시대가 그렇게 빨리 막을 내리지 않아도 좋은 게 아닐까.”(196쪽)

 

―이 소설과 주인공 선미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한껏 시니컬한 톤의 소설을 써볼까 마음먹고 썼던 작품이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이전에 썼던 작품의 톤을 생각하는데, 이전 작품이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다음 작품은 따뜻한 톤의 이야기를 쓰고, 반대로 이전에 따뜻한 작품을 썼다면 좀 건조한 톤의 작품을 쓴다. 팬데믹 시기를 나중에 어떻게 회고하게 될까, 라고 생각해 쓰게 됐다. 당시 우리들은 날카로워져 있었던 것 같다. 반강제적으로 갇혀 있거나 여러 지침이 사람을 제한하고 통제했다. 어딜 가든지 QR코드를 찍어야 했고 동선이 남겨졌다. 마스크가 마치 통행증 같아서 마스크 없이는 어디를 갈 수도 없었다. 마스크 적응이 힘들었지만, 마스크를 쓰면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없고 익명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어떤 면에선 좋아진 점도 있는 것 같았다. 마스크 아래에 가려지는 어떤 마음을 한번 그려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선미는 ‘어쩔 수 없다’라는 태도를 갖는 인물 같은데) 작품이 짧아서 선미의 다면성을 다 보여줄 수 없었던 것 같다. 인물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 짜증으로 가득 찬 인물을 그려보고 싶었다.”

 

또다른 단편 「피아노」는 비정한 현실의 한복판에서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비로소 드러나는 감정을 응시하는 사람을 그린다. 혜심은 공부방을 정리하며 한때 낭만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피아노를 처분하려 한다. 하지만 피아노가 사라지고 얼마 뒤 당근에 올라 있는 것을 추적하면서, 제자 준용과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마음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카트에 피아노를 얹고 두 사람은 언덕길을 찬찬히 내려왔다. 카트를 혼자 끌고 혜심의 집 앞까지 와서 피아노를 가져갔을 준용을 생각하자 혜심은 마음이 아렸다. ‘근데 버리신 거 아니었어요?’ 준용이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준용의 엄마도 했던 말이었다.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찾을 게 있었어.’ 혜심이 말했다. 준용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한참을 쭈뼛거린 끝에 한마디를 얹었다. ‘저 수학 모르는 거 있는데 조금만 알려주시면 안돼요? 평균 구하는 방법을 정말 모르겠어요.’ 혜심은 짧은 숨을 토해냈다. 그 끝에 가벼운 콧바람이 새어 나왔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준용은 마음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91~92쪽)

손원평. ⓒ표기식. 창비 제공

―어떤 희망 같은 감정의 순간을 포착한 「피아노」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지.

 

“당근 거래나 중고 거래를 해보면 거기에는 어떤 마음이 묻어 있는 것 같고, 어떤 마음이 담기를 또 바라는 것 같다. 새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는 다른 어떤 정서가 있다. 당근거래도 일종의 처분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처분되지 않는, 끝까지 남아 있는 감정이라는 것도 있다. 아이들에 대한 감정이나 교육자로서의 마음, 학생이라는 감정 등을 지켜주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혹시 혜심의 모델이 있는지) 모델 같은 인물은 따로 없다. 저의 경우 이야기에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말한 것처럼, 일상에서 여러 풍경이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게 되는데, 글을 쓸 때가 됐을 때 스쳐갔던 사람들의 모습이나 단상들이 뭉쳐져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혜심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는데, 원칙주의자 같고 조금 엄한 선생을 그려보고 싶었다.(작가 자신은 생활에서 원칙주의자인가) 전 고무줄처럼 무계획적인 면도 있고, 필요에 의해 약간 원칙주의자인 것처럼 할 때도 있다. 다른 엄마들과 비슷한 것 같다.”

 

소설집을 닫는 단편 「딸과 깍 사이」는 사무실의 기계적이고 무심한 일상 속에서 사소한 균열을 불러오는 파문을 그리고, 이를 통해 효율의 논리 아래 가려져 있던 인간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뜨개질을 취미로 하는 회사 경리팀 소미는 직원들의 월급을 이체하고 입사 예정자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매뉴얼에 따라 퇴직 대상자에게 퇴직 절차를 통보하기도 한다. 일들은 대체로 한번 클릭으로 이뤄진다. 그러던 어느 날, 소미는 희망퇴직 권고 리스트에서 평소 좋아하던 고객 지원팀 선배 영림의 이름을 보게 되고 괴로워한다. 결국 월말이 되자 메일을 예약 발송하게 되지만, 내용을 잘못 첨부하면서 상황은 전혀 예상밖으로 전개된다.

 

“바늘이 바쁘게 실을 감아 한발짝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도달한 목적지는 전보다 근사한 곳이라는 걸, 엉키거나 후퇴하더라도 결국은 무사히 어딘가에, 어떤 상태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실과 바늘의 작은 전진을 보며 소미는 확신했다.”(225쪽)

 

―이 소설은 어떤 희망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소설집을 엮으려고 보니까, 「피아노」 같은 따뜻한 톤의 작품도 있지만, 대체로 차가운 톤의 한 방향으로 엮이는 것 같아서 소설집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따뜻하고 희망적인 톤의 작품을 쓰려고 했다. 감정이나 영혼 없이 힘겹게 일하는 어떤 MZ세대 여성 인물을 떠올렸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힘들게 일하는 와중에서도 만족이나 자아실현을 위해 뭔가를 하더라. 그래서 손으로 하는 뜨개질이 생각났다. 하루하루는 좀 잿빛일지언정 마음속에선 꽃 한 송이 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고, 속으론 선배님 하면서도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너무 낙관적 아닌가) 소설집을 묶어놓고 보니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인물들이 전반적으로 자신의 일을 즐기거나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좀 보상을 받는 인물을 바랐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월급날을 기다리면서 의도치 않게 작은 인정이나 활력, 동료애 등이 잔잔하게 있기도 하지 않는가. 그것을 그려보고 싶었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장편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에 두 번째 단편집이다. 첫 번째 소설집 『타인의 집』이 집이라는 테마로 쓴 것이라면, 이번 소설집은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 모습을 담은 것 같다. 다양한 글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이번 소설들에는 돈이나 직장 생활 등이 많이 담겨 있고 관계 문제도 많이 담긴 것 같다) 단편을 쓸 때와 장편을 쓸 때 작가로서의 스탠스가 점점 달라지는 것 같다. 장편을 쓸 때는 하나의 커다란 긴 이야기니까 독자에게 조금 더 상냥해지려고 하는 것 같고, 반면 단편을 쓸 때는 좀더 작가로서, 작가 위치에 좀 더 가까워지려는 것 같다. 그냥 앞뒤 생각하지 않고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 해보지 않았던 이야기,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기도 했고, 불쑥 무서운 음유시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습니다’가 아닌 ‘∼읍니다’라고 적혀 있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나라별로 분류된 전래동화 수백 편이 엮인 50권짜리 『세계전래동화』 전집을 초등학교 2학년생 손원평은 읽고 또 있었다.

 

그것은 가히 탐독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집을 누구에게 준다고 했을 때에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어느 순간 이야기를 쓰는 사람, 쓰는 것에 대한 열망이 부풀어 올랐고,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장래 희망란에 ‘작가’를 적어 넣고 있었다. ‘작가 손원평’의 씨가 뿌려지던 순간이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꿈이 사라졌지만, 문학만은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벌써 이런 책을 읽느냐.” 제대로 의미를 알진 못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읽고 있던 중학생 손원평을 보고 선생은 물었다. 새벽을 밝히며 펄벅의 『대지』를 읽기도 했다. 작가는 보이지 않고 중국의 농부 왕릉 3대의 곡진한 이야기가 책 안에서 진동했다.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한 대학 시절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지만, 문학만은 그를 지켜주었다. 대학 시절, 배우지 않았지만 소설 습작을 써서 세계일보를 비롯해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하곤 했다. 도전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이것저것 도전해 보다가 우연히 영화 연출을 먼저 하게 됐지만, 여전히 그의 곁에는 소설이 있었다. 영화 현장에 있을 때에도 가끔씩 습작을 써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시나리오는 영화가 만들어져야 완성되지만, 소설은 글을 쓰면 그 자체로 완성이 돼 좋았다. 하지만 한동안 등단은 이뤄지지 못했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구나. 엄마가 돼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심지어 한두 시간만 혼자 놔둬도 위험해질 정도로 나약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이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는 게 신기했다. 살아남았다는 것이야말로 누군가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아,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구나.

 

엄마가 된 손원평은 아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자신과 감정을 계속 교류한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언어에 앞서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정이란 소통하고 세상과 교류하기 위해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는 것도.

 

만약 감정이 없으면 어떻게 소통을 할까. 말도 하지 못하지만 감정이 있어서 울고 웃고 서로 주고받고 있는데, 만약 감정이 없으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감정이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본 결과,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미그달라’, 혹은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아서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진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없는 소년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보통 감정이 없는 사람은 비정하게 그려지지만, 그는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과 관계, 성장의 의미를 되묻고 싶었다. 장편소설 『아몬드』가 탄생한 순간이었고, 영화를 거쳐 다시 원류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16세 소년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의 극진한 노력과 사랑으로 별 탈 없이 자라지만. 16세 생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가족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곧 ‘괴물’로 낙인찍히는 윤재는 ‘또 다른 괴물’ 곤이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양극단에 서 있는 두 소년은 편견 없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기 되는데….

 

1979년 서울에 태어나고 자란 손원평은 2016년 장편소설 『아몬드』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그는 이후 장편소설 『서른의 반경』, 『프리즘』, 『튜브』, 『젊음의 나라』 등을, 소설집 『타인의 집』 등을 발표했다. 특히 『아몬드』는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렸고, 북미와 아시아, 유럽권 30여 개국에 번역 수출됐다. 일본서점대상과 제주4·3평화문학상, 일본 니쿠텐코보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소설 『아몬드』는 상도 많이 받았고 많은 나라에 번역 출간돼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해외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만났다. 한 번은 폴란드에 갔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책 이야기를 들으려고 몰려 있더라. 독자 사인에만 거의 2시간 걸렸다. 어느 4월 스페인에 가서 사인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한 독자가 자신의 몸에 주인공인 윤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 것을 보여주더라.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일본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일본 독자들은 은근하고 되게 조용조용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 독자가 많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진 감정을 다루고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 쓸 때 쓴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제 말이 가 닿을지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 설득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음 문장을 쓰거나 이것을 완결했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때에는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건 간에 제 스스로 설득이 되는 지점까지 갔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도자기 장인이 남들이 어떻게 볼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스스로 다 됐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듯. 전반적으로 톺아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봤을 때 제 스스로 설득이 됐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제가 그리는 인물들, 그들이 하는 말, 그리고 리듬 전부. 다르게 말하면, 남들은 제가 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좀 별로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항상 최선의 작품을, 그것이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어느 때 설득이 잘 안되는지) 인물이 과연 이런 말을, 하고 의심이 드는 순간은 설득이 되지 않는 순간인 것 같다. 그럼 계속 고쳐야한다.”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 영화계로 먼저 입문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손원평은 2001년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고 2006년 희곡 「순간을 믿어요」로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등단했다. 장편 영화 「침입자」의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영화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는데, 소설쓰기와 영화의 관계는 어떠한지.

 

“대학 졸업 무렵, 영화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하게 됐다. 영화와 소설은 창작을 한다는 면에선 같지만, 작업 형태는 전혀 다르다. 영화는 공동 작업이고, 소설은 개인 작업이다. 영화는 많은 사람이 오케이를 해야 하는 합의의 결과이고, 영화 시나리오도 그 자체가 완결이 아니라 영화가 완성돼야 가치를 갖는다. 반면 소설은 남이 인정하건 하지 않건 다 쓰면 완성이 된다. 지금은 아무래도 소설 쪽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드는 그는 아침에는 조금 늦게 일어난다. 바닥에 있는 물건을 줍고 청소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혼자 있는 시간에 주로 부엌 테이블에서 글을 쓴다. 엉덩이로 쓰는 것이 아닌, 응축된 힘을 쏟아 부어 쓴다. 글이 잘 안 풀릴 때에는 타이머를 설정해 놓기도. 오후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며, 멍 때리기도 하고, 산책도….

 

젊은 작가 손원평은 늘 관찰과 생각을 굴린다. 늑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늑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보고, 관련된 인물을 찾아보거나 더 깊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넘어가고 잊어버린다. 만약에 그가 작가로서 대성한다면, 남들보다 이런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질문이 생기고 오래 남으면 펜을 든다. 스쳐 지나간 모습이나 뉴스와 사건, 잠깐 떠올리거나 상상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버무려져서 나오고. 그 들끓는 이야기의 숲 사이에서 효원과 주영 역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데….

 

“‘재미있다더니 왜 한순간에 끊어?’ 친구의 말에 주영이 음료를 홀짝이곤 입을 뗐다. ‘강사 니트가 너무 지루해.’ ‘니트? 니트가 지루하다고?’ 효원이 묻고 싶은 말을 그녀의 친구가 대신 했다. ‘있어. 맨날 입는 단조롭고 따분한 격자무늬 니트가. 그리고 그 선생님이 쓰는 몇몇 단어들이, 좀 그래. 단단한 심지, 라든가 마음의 중력, 이런 식의 표현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듣다보면 싫어지더라.’ ‘으휴, 너도 참. 근데 맞아. 항상 사소한 게 문제지.’ 친구가 그녀를 두둔했다. ‘결정적으로, 자기 개인 화실 냈다고 은근히 유인하더라.’…‘그래, 잘했다. 세상에 할 거투성이 볼 거투성이인데 우리 시간 낭비, 인생 낭비 하지 말자! 우린 소중하잖니!’ 친구가 주영의 편을 들며 요란한 웃음을 보탰다. 짜랑짜랑한 굽 소리를 내며 두 여자는 밖으로 사라졌다. 효원은 한참 동안이나, 울음이 다 그치고 눈물이 말라 누구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곳에서 나왔다. 해가 다 져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몹시 피로해 보였다. 분명 주영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고 믿었는데 갑자기 진열대 위에 있다가 폐기 처분된 상품이 된 것 같았다.”(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