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막는 미국·자본 끊는 중국… ‘기술 쇄국주의’ 전면화

미국 의회가 동맹국을 동원해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하자, 중국이 자국 핵심 기술 기업들에 미국 자본 유치를 금지하는 지침을 내리며 맞대응에 나섰다. 장비와 자본의 흐름을 상호 차단하는 양국의 ‘기술 쇄국주의’가 전면화되는 양상이다.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를 비롯한 규제 당국은 최근 문샷 AI, 스텝펀 등 주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정부의 명시적 승인 없는 미국 자본 유치를 거부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지침은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에도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특히 비상장 기업의 구주 매각 등을 통해 미국 투자자가 자국 AI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는 행위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문샷 AI는 기업가치 약 180억달러(약 26조6000억원)로 평가받는 자금 조달 라운드에서 최대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스텝펀은 홍콩에서 5억달러(약 7500억원) 규모 상장을 검토 중인 핵심 기업들이다. 당국은 이들이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AI 챗봇 중 하나인 ‘더우바오’와 동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 등을 개발한 만큼 기술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최근 자국 AI 혁신 기업인 ‘마누스’가 미국 메타에 인수된 사건 이후 나온 사후 단속 성격이 짙다. 인간 개입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기술로 ‘제2의 딥시크’라 불리던 마누스는 지난해 말 메타에 인수됐다. 중국 당국은 해당 인수 건이 수출 허가 대상인지 조사에 나서는 한편 마누스 경영진의 출국을 금지하는 등 강력한 단속에 나선 상태다.

 

미국 역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지난 22일 첨단 기술의 대중 수출 통제를 동맹국 수준까지 강제하는 ‘매치법’ 등 20여 개 법안을 가결했다. 매치법은 행정부가 중국과 같은 우려국에 수출을 통제해야 할 첨단 반도체 장비와 관련 시설을 식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나 일본 등 동맹국이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조치를 채택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명문화했다.

 

이는 최근 대중 수출 통제에서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의회 차원의 견제 장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에 초당적으로 통과한 법안들은 2018년 이후 도입된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을 개편하려는 가장 중요한 입법 시도로 평가받는다.

 

중국 상무부는 즉각 반발했다. 상무부는 25일 대변인 명의의 입장을 통해 “미국의 수출 통제 남용은 국제 경제무역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은 관련 입법 진행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중국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평가하며, 필요한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익을 확고히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