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돔=남정훈 기자] 삼성과 키움의 2026 KBO리그 맞대결이 펼쳐진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 이날 전광판에는 특별한 이름이 새겨졌다. 키움의 4번 타자, 1루수 박병호. 지난 시즌을 끝으로 21년간 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 키움의 잔류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병호의 선수 은퇴식이 이날 펼쳐졌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히어로즈 군단의 4번 타자를 지켜온 박병호를 위해 키움은 ‘특별 엔트리’로 박병호를 일일 등록했고, 박병호는 마지막으로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4번타자 1루수로 올리게 됐다. 키움은 박병호가 현역 마지막을 보냈던 삼성과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삼성도 ‘우리도 행복했어요’, ‘등번호 52번’ 엠블럼과 패치가 부착된 삼성 유니폼을 박병호에게 선물하며 그의 현역 은퇴를 축하했다.
양팀 선수들이 모두 덕아웃에서 나와 도열해 박수를 보내며 떠나는 레전드에게 예우를 다 하는 가운데 마이크를 잡은 박병호는 “어릴 적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야구를 시작했다”고 입을 뗀 뒤 울먹였다. 이어 “수많은 선배님들의 은퇴식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은퇴식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저도 훌륭한 선배님들처럼 그런 선수로 남을 수 있게 만들어주신 키움 히어로즈 구단 모든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 뒤 삼성 팬들이 있는 3루 쪽 관중석으로 돌아서서 “제가 지난해 삼성 선수로 은퇴를 하면서 짧지만 행복야구를 할 수 있게 해준 삼성 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영상으로 인사드렸었는데, 얼굴을 뵙고 인사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인사했다.
박병호의 마지막 소감은 1루 쪽 히어로즈 팬들을 향했다. “제가 선수로서의 마지막 유니폼이 삼성이라는 것에 슬퍼해주셨던 히어로즈 팬분들, 제가 히어로즈에 다시 와서 코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고척돔에 올 때마다 저를 응원해 주신 팬분들 덕분이었다. 그동안 ‘선수 박병호’를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제 히어로즈의 코치로 좋은 선수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이날 박병호는 시타를 맡아 타석에 섰다. 시구자는 아들 승리(12)군이었다. 투수판을 밟고 던진 승리군의 시구가 포수 미트에 꽂혔고, 박병호는 뿌듯한 미소와 함께 헛스윙으로 화답했다. 경기를 앞두고 1루 미트를 끼고 1루 베이스에 선 박병호는 주심이 “플레이 볼”을 외치자 후배 서건창에게 꽃다발을 받고 그라운드에서 빠졌다. 이로써 박 코치의 마지막 소속팀은 키움 히어로즈로 기록된다.
박병호는 성남고 재학 시절 고교야구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며 거포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005년 LG의 1차 지명을 받고 큰 기대 속에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이따금씩 주어지는 기회 속에 6년 간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2011년 7월, 박병호의 선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넥센(키움 전신)으로 트레이드됐고,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시진 감독은 박병호에게 “너는 이제 우리의 4번타자다”라고 말하며 전폭적으로 출전 기회를 부여했다. 그해 후반기에 넥센 유니폼을 입고 12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의 숨어있던 잠재력을 내비친 박병호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홈런왕 4연패를 달성하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거듭났다. 2019년과 2022년에도 홈런왕에 오른 박병호는 개인 통산 홈런왕 타이틀을 여섯 번이나 거머쥐었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지난해까지 21년간 그라운드를 지키며 때려낸 홈런은 418개로 역대 통산 4위다.
‘오늘의 박병호’가 ‘프로 입단 전 성남고 3학년 박병호’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냐고 묻자 “‘프로가 쉬운 곳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조금만 참고 하면 은퇴식까지 하면서 은퇴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다. 최선을 다 해보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라고 답했다.
이제 지도자로서의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처음 코치직을 맡을 때부터 1군보다는 힘들게 야구하고 있는 유망주 선수들과 함께 하는 잔류군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짧지만 2년간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면서 선수와 지도자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게 좋은지 고민했다. 한국과 미국의 야구문화가 다르지만, 저는 선수들과 스킨십과 대화를 많이 하는,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