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민원 처리에 도입된 인공지능(AI) 챗봇 이용 건수가 2년 만에 31%가량 줄어든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콜센터 직원이 ‘AI가 대체할 직업 1순위’로 꼽히는 상황에서 인간 상담사에 대한 선호가 증명된 것이라는 평가다. AI가 단순 반복 일자리를 모조리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도 일부분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실에 제출한 ‘챗봇 일평균 상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챗봇 시스템의 일평균 상담 건수는 도입 첫해인 2023년 3329건에서 2024년 2845건, 2025년 2317건으로 매해 감소했다. 연도별 누적 상담 건수도 2023년 81만9902건에서 2025년 56만3143건으로 31.3% 줄었다.
노동부는 2023년부터 고객상담센터에 AI 챗봇을 도입해 구직급여(실업급여)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AI 도입 효과가 뚜렷했다면 상담센터로 들어오는 전화량도 큰 폭으로 감소해야 했지만, 실제 감소 폭은 제한적이다. 인입량(상담사 연결을 위해 걸려온 전화 건수)은 2023년 1만2359건, 2024년 1만2183건, 2025년 1만2031건으로 나타나 감소 폭이 1.2~1.4%포인트에 그쳤다. 챗봇 도입이 예상보다 인간 상담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노동부는 챗봇 상담의 한계를 인정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챗봇 상담분야인 실업급여 업무는 고객이 실무 담당자 연결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챗봇이 상담을 완료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콜센터 현장에서는 인간 상담사를 다시 채용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은행권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장은 “사람의 공감·친절·호응이 필요한 영역은 AI가 대신하기 어렵다”며 공공기관과 금융권에 빠르게 확산한 AI 상담 시스템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2022년 AI 도입이 본격화할 때 은행권이 자연퇴사하는 상담사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다. AI로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며 “어느 순간부터 콜 대응이 어려워지자 최근 은행들이 하나둘 인원을 충원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콜센터는 AI 도입의 최전선에 있다고 여겨져 왔다. 반복 문의에 답하고, 고객 정보를 분류하는 일은 AI가 가장 먼저 대체할 수 있는 업무로 꼽혔다. AI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상담사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현장에서는 ‘AI로 일자리가 소멸된다’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AI 상담 관련 고객 항의가 적지 않아서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최근 AI상담(AICC) 이용 경험이 있는 시민 706명을 설문한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설문에서 응답자 54.2%는 서비스에 ‘불만족한다’고 답했고, 87.5%는 ‘여전히 인간 상담사를 선호한다’고 했다.
AI 도입 후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했다는 문제의식도 크다.
최나영 든든한콜센터지부 조직국장은 “감정노동이 더 심해졌다”고 토로하며 “AI가 먼저 전화를 받은 뒤부터는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느냐’는 항의에 일단 사과부터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김 지부장도 “아직 AI의 한계가 분명한데도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업무를 통합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상담사들 사이에서는 오랜 기간 축적한 상담 노하우가 충분한 설명이나 동의 없이 AI 학습에 활용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현장 콜센터 노동자들은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를 대체할지도 모르는 AI가 아무런 동의도 없이 수년간 쌓인 상담 기술을 가져간다는 점”이라며 “용역 소속 상담사의 노동력과 데이터를 원청이 가져가는 구조 자체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콜센터가 직면한 변화에서 다른 일터의 미래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AI 도입이 콜센터 사례처럼 서비스 품질 저하나 감정노동 가중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AI를 어떻게 설계하고 통제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AI와 사람이 맡을 업무 범위를 분리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나누는 공존 모델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사회공공연구원은 ‘공공금융 콜센터 AI 도입 현황과 문제점’ 연구보고서에서 “콜센터의 AI 도입은 적어도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확산할 것”이라며 “AI 시스템이 노동자 감시·통제와 인력감축을 위해서가 아닌 노동자 업무를 지원하고 소비자 혜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AI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지금 기업들은 AI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방향으로 AI 개발이 이뤄지면 경쟁이 심해지고, 노동 대체 효과만 더욱 커질 것”이라며 “기술 발전에 맞춰 인간과 AI가 공생하는 일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