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부산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기이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골대 앞을 지켜야 할 아이들은 운동장 대신 교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스마트폰 화면 속 가상의 공을 찼다. 학교 측이 내세운 이유는 ‘안전사고 예방’과 ‘소음 민원’. 아이들이 마음껏 땀 흘리며 기함을 토해야 할 운동장은 그렇게 민원이라는 먼지만 쌓여가는 ‘무균실’이 됐다.
26일 정장 대신 축구복을 입고 부산 연제구의 한 풋살장을 찾은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이 침묵하는 운동장을 향해 거침없는 슛을 날렸다. 그는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는 도시에는 미래가 없다”며 “지금 우리 아이들은 운동회 시작 전 인근 주민들에게 ‘죄송합니다’부터 복창하며 사과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고 현 교육계의 서글픈 자화상을 꼬집었다.
천 원내대표는 이러한 현상이 아파트 밀집 지역의 소음 민원과 ‘부상·소외 우려’ 등 과도한 민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운동장은 아이들이 실패하고 화해하며 자라야 할 거대한 성장판”이라며 “시끄러운 소수의 악성 민원을 막아내지 못하고 조용한 다수의 교육권을 방치한 것은 명백한 정치의 실패”라고 일갈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나선 정이한 부산시장 후보는 무너진 교육 현장을 바로잡을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을 약속했다. 정 후보는 “교사가 악성 민원 전면에 홀로 서지 않도록 교육청 차원의 통합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교육 활동 중 발생하는 분쟁에 대한 법적 지원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은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성장하도록 돕는 과정”이라며 부산에서부터 ‘교육의 정상화’를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금지된 공놀이’의 실상은 숫자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이날 천 원내대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6189곳 중 312곳(5.04%)이 점심시간과 방과 후 학교체육 활동을 ‘전면 제한’하고 있다. 특히 대도시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서울은 2024년 14.2%에서 올해 16.7%로 3년째 증가 중이며, 경기도 역시 비슷한 추세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은 부산이다. 부산 지역 초등학교 303개교 중 무려 34.7%(105곳)가 아이들의 발에서 공을 뺏었다. 전국 최고 수치로, 부산 초등생 3명 중 1명은 정규 수업 외에 운동장에서 뛰어놀 권리를 사실상 박탈당한 셈이다. 특히 이번 조사는 ‘전면 금지’ 사례만 집계한 것이어서, 시간이나 종목을 일부 제한하는 학교까지 포함하면 실제 ‘공 뺏긴 아이들’의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표가 되지 않는 아이들의 놀 권리와 민원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위축된 교권. 그 교차점에서 축구복을 입고 나타난 두 정치인의 행보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우리 교육 현장의 '비정상적 침묵'을 깨트리는 선언이었다. 부산에서 시작된 이 ‘운동장 되찾기’ 바람이 전국 교육 현장의 닫힌 성장판을 다시 깨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