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분뇨 5400t 치워라” 명령에도 방치해 유죄…대법 “의견 기회 줬어야” 파기환송

대법, ‘소명기회 미부여’ 절차 하자 있었다며 파기

방치된 가축 분뇨 5400t을 치우라는 명령을 수차례 어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농부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비슷한 취지의 명령을 반복했더라도 이행할 처분이 추가되거나 시간 간격이 있다면 반드시 당사자가 의견을 밝힐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A(71)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2일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시스

A씨는 충남 서산시장으로부터 2023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총 5차례 ‘야적해 방치된 가축 분뇨(퇴비) 5400t을 적법한 처리시설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요구받은 기간까지 이행하지 않자 두 차례에 걸쳐 재판에 넘겨졌다.

 

서산시는 앞서 2023년 3월에도 A씨에게 유사한 내용의 명령을 했으나 A씨가 인근 토지에 분뇨를 살표한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해당 명령의 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가축분뇨법에 따르면 시장·군수·구청장은 방치된 가축 분뇨로 환경 오염이 우려되면 배출자 등에게 필요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은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A씨는 1심 재판이 진행되던 2014년 10월 문제가 된 가축 분뇨를 모두 치운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2건의 1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1·2차 명령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 3∼5차 명령 위반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심에선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뒤 벌금 1000만원으로 감형했다.

 

재판에선 서산시의 명령이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가 쟁점이었다. 행정절차법 21조에 따르면 행정청이 어떤 의무를 부여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려면 당사자에게 소명을 듣는 의견 제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서산시는 A씨에게 2023년 3월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의견을 제출하라는 처분사전통지를 했으나 A씨는 답하지 않았다.

 

검찰은 그 다음부터 내려진 명령 위반을 문제를 삼았다. 하지만 A씨 측은 5차례 모두 서산시가 사전통지 절차를 거치지 않아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2심은 서산시가 매번 새로운 명령을 한 게 아니므로 행정절차법상 소명을 듣지 않아도 되는 예외인 ‘의견 청취가 명백히 불필요하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이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A씨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시각은 달랐다. 서산시가 2023년 4월 1차 명령에 ‘농경지에 살포해서는 안 된다’는 조치를 추가했는데, 이를 ‘의견 청취가 명백히 불필요한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앞선 명령의 조치 사항을 구체화한 것을 넘어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인 만큼, 별도의 사항이 추가되고 조치 기간이 달라진 성질에 비춰 의견 청취가 명백히 불필요한 상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2∼5차 명령을 두고도 “1~3개월 정도의 간격이 있었으므로 사정 변경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만큼 A씨의 방어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A씨에게 적용된 혐의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 조치명령이 적법해야 한다”며 “조치명령이 당연무효가 아니더라도 위법한 것으로 인정되면 죄가 성립될 수 없고, 이는 조치명령이 절차적 하자로 인해 위법한 때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