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피아노가 놓인 어두운 무대. 수직 LED 기둥으로 짜올린 대형 샹들리에가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은은한 빛을 흩뿌리고, 천장에 고정된 조명은 오직 피아노 건반만을 비춘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이었던 장 콕토(1889~1963)가 직접 예술과 인생을 논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진 후 ‘장 콕토 3부작’이 시작됐다.
26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라베크 자매 연주회는 ‘듀오’라는 공연 형식의 정점을 보여준 무대였다. 피아노 듀오는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러나 1968년부터 듀오로 활동해 온 카티아·마리엘 라베크의 듀오 연주는 비범한 수준의 경계를 아득히 넘어선 경지였다. 두 대의 피아노에서 흘러나온 네 개의 선율은 하나의 영혼을 직조하듯 짜올렸다. “서로 너무 사랑해서 함께 연주하고 싶었다”던 공연 전 라베크 자매 인터뷰가 연주를 듣고 난 후에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그렇게 반세기를 함께해 온 두 자매의 호흡은 경이로웠다.
장 콕토 영화를 원작으로 글래스가 1990년대 작곡한 세 편의 오페라를 라베크 자매만을 위한 두 대의 피아노 모음곡으로 다시 풀어낸 이날 공연은 엄청난 몰입감 속에 펼쳐졌다.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곡가의 작품이지만, 단순한 반복의 뼈대 위에 멜로디와 서정성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글래스는 우리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라던 카티아 설명 그대로였다.
특히 3부 ‘앙팡테리블’이 인상적이었다. 폐쇄된 방 안에서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파멸로 치닫는 남매의 이야기가 두 자매의 손끝에서 긴장과 서정의 진폭을 오갔다. ‘젊음과 예술’에 대한 콕토의 사랑도 깊이 각인됐다.
“나는 젊음을 사랑하고 그들을 신뢰한다. 젊음은 곧 ‘움직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이야말로 내가 사랑해 온 유일한 가치이다…. 스물다섯이 되어 습관에 안주하기 시작한 이들은 예술이란 앞서 나가거나 뒤처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진보와는 무관하다. 예술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진동하는 상태에 가깝다.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젊음이다.”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로 공연을 마친 자매는 쏟아지는 갈채에 답례하며 앙코르로 글래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소품’ 중 제4곡과 라벨 ‘어미 거위 모음곡’ 중 ‘요정의 정원’을 선사했다. 듣는 것만으로 행복한 감정이 밀려드는, 역시 평생을 함께한 자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선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