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는 인공지능(AI) 시대다. 관계의 밀도는 점점 낮아지고, 인간은 역설적으로 존재의 근원을 갈망한다. 61년 전, 전후(戰後) 재건의 활기 속에서도 실존적 방황을 겪던 일본 도쿄의 젊은이들이 던진 물음이 2026년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65년 일본에서 이루어진 문선명 총재와 현지 대학생 및 청년들의 질의응답 기록을 최근 읽었다. 40여 개 문항, 3만 자에 이르는 이 기록은 오늘날의 세계관 자체를 뒤집는 사유를 담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문 총재가 유학 시절 체득한 유창한 일본어로 통역 없이 청년들과 직접 마주했다는 사실이다. 휴식을 포함해 반나절 이상 이어진 이 장시간의 세션은 종교적 설파를 넘어 생생한 심정으로 부딪친 지적·영적 투쟁의 현장이었다.
질문은 신앙의 영역에 머물지 않았다. 우주의 구조와 인간의 본질, 역사적 고통과 자연의 질서까지,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젊은 지성들의 치열한 몸짓이 느껴졌다. 이에 답하는 문 총재의 방식 또한 익숙한 종교 언어의 반복이 아니었다. 그는 기존의 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정적 개념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3가지는 오늘날 다시 읽어도 사유를 뒤흔드는 힘을 지니는 동시에, 하나의 사상으로 따로 떼어 연구해도 될 만큼 깊이를 갖는다.
첫째는 “우주의 근본은 부자(父子) 관계”라는 선언이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답을 제시한 것이다. 서구 신학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창조주와 피조물의 거리, 주인과 종의 구도를 그는 단번에 전복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법적·존재론적 관계 대신에 ‘부모와 자식’이라는 심정적·혈연적 관계로 규정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우주는 냉정한 질서의 체계를 넘어 관계와 정서가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다시 그려진다. 인간 역시 피조물에 그치지 않고, 부정할 수 없는 인연 속에 놓인 존재로 자리 잡는다. 이 한 문장은 신학의 중심축을 권위에서 사랑으로, 구조에서 관계로 옮겨 놓기에 충분하다.
둘째는 “자연에서 먹이가 되는 과정은 희생이 아니라 건설”이라는 역설이다. 이 개념은 자연의 약육강식과 사랑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서 나왔다. 역시 답변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직관은 대체로 연민에서 출발한다. 맹수가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장면을 보며 우리는 불쌍함을 느낀다. 그러나 문 총재는 이 장면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 모든 존재는 개체 목적과 전체 목적이라는 이중 구조를 지니며, 작은 존재가 큰 존재의 일부로 흡수되는 것을 파괴가 아닌 더 큰 질서를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해석은 생태계의 상호의존성을 설명하는 동시에 고통과 희생을 단순한 악으로만 보지 않는 목적론적 윤리를 제시한다. 물론 이 관점은 논쟁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 총재는 ‘불쌍함’이라는 감정적 차원을 넘어 ‘전체 구조’라는 거시적 시야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심정(心情)이 우주를 움직인다”는 세계관이다.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었지만, 또 다른 사유의 전환이 이뤄졌다. 현대인은 세계를 물리 법칙으로 이해하고, 종교는 그것을 신의 의지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그는 전혀 다른 논리를 꺼낸다. 우주의 근본 작용 원리는 힘도, 법칙도 아닌 ‘심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심정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깊은 감정만이 아니다. 관계를 형성하고, 존재를 끌어당기며, 방향을 결정짓는 근원적 힘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심정에 일치할 때 만물이 그를 향한다는 문 총재의 설명은 세계를 관계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리적 힘에 의한 우주가 아니라, 사랑과 의미로 연결된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본 청년들은 이 뜨거운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아마도 문 총재의 사유는 그들에게 허무주의를 넘어선 ‘실존적 가치’, 비정한 현실을 해석하는 ‘긍정적 목적론’, 그리고 차가운 지성을 데우는 ‘심정적 야성’을 선물했을 것이다. 이 기록은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결국 우주는 힘이 아닌 관계로, 법칙이 아닌 심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위함’과 ‘희생’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거대한 ‘사랑의 유기체’라는 파격적인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