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쉬는 시간. 아이들 운동장은 모처럼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산했다. 예전 같으면 축구공을 차며 뛰어놀 아이들로 북적였겠지만, 지금은 교사들의 삼엄한 감시 아래 ‘걷기’ 위주의 활동만 허용된다. 운동장에서 넘어져 무릎만 까져도 학부모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자칫 큰 사고라도 나면 교사 개인이 민·형사상 책임을 온통 짊어져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한 체육 교사는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운동장은 도전의 공간이지만, 저희에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사고 한 번에 교직 인생이 날아갈 수 있는데, 누가 선뜻 공을 내주겠습니까.” 멈춰버린 학교체육의 현주소다.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 현장체험학습 축소 움직임을 두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교사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의 소중한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취지다. 대통령은 안전요원 보강과 예산 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현실 왜곡”이라며 정면으로 받아쳤다. 천 원내대표는 우선 대통령이 언급한 ‘보신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교사와 학교가 체험학습을 망설이는 것은 결코 책임을 피하기 위한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라며 “사고가 나면 정부와 교육청은 교사 뒤로 숨고, 개별 교사가 모든 형사 책임과 민사 소송의 부담을 떠안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22년 속초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버스 사고 당시, 인솔 교사들은 지침을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기사의 과실과 결합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천 원내대표는 이를 언급하며 “지난해 학교안전법을 개정해 면책 조항을 넣었지만, 입증 책임은 여전히 교사에게 있고 판단 기준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면서 “현장의 공포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천 원내대표는 대통령 곁에서 침묵한 교육부 장관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는 “대통령이 현실을 모르는 발언을 하는데 옆에서 ‘예스맨’ 역할만 반복하는 교육부 수장이 국무회의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면서 “사고 시 면책 기준 하나 명확히 세우지 못한 채 ‘그냥 가라’고 등을 떠밀면 또 누가 희생자가 되겠느냐”라고 일갈했다.
이어 “실효성 있는 면책 기준과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 같은 제도적 보완 없이는 어떤 말로도 현장체험학습은 돌아오지 않는다”며 “정상적인 교육 활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경찰서나 법원에 불려 다니는 일조차 국가가 대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천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수십 년 전 개인적 추억에 기반한 가벼운 말 이전에, 지금 학교 현장이 어떤 공포 속에 있는지부터 정확하게 직시하라”고 촉구했다.
문제는 이러한 법적 공포가 현장체험학습을 넘어 학교체육 전반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 발생 시 입증 책임이 오롯이 교사 개인에게 지워지는 구조 탓에, 학교 현장에서는 이른바 ‘고위험 종목’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축구와 농구는 접촉이 적은 피구나 단순 걷기로 대체되는 실정이다. 그마저도 수업 시간의 절반은 기술 지도 대신 “절대 다치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 전달에 매몰돼 있다.
지난해 학교안전법이 개정되며 ‘지침 준수 시 면책’ 조항이 신설됐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실효성은 제로에 가깝다. 사고가 터지는 순간 교사는 수사기관을 오가며 자신이 모든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스스로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운동장에서 교사들은 교육적 열정 대신 ‘사법적 생존’을 위한 방어적 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학교체육 현장을 지탱할 실질적인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천 원내대표가 제시한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 역시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정상적인 교육 활동 중 발생한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민·형사상 대응의 주체가 돼 교사가 법정과 수사기관을 전전하며 겪는 절차적 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명확한 면책 기준과 소송비용 전액 지원 등 실효성 있는 제도 보완이 뒤따라야 학교체육 정상화도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