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라 간 프랑스 대통령, ‘왕의 귀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2월 한국이 유럽의 안도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는 기사는 당시 신문지상에 그리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1993년에야 정식 독립국이 되어 유엔에 가입한 안도라는 솔직히 한국인에겐 널리 알려진 나라가 아니다. 국토 면적이 468㎢로 서울시(약 605㎢)보다도 작은데다 인구는 9만명가량에 불과하다. 수교 후 30년이 지났지만 안도라에 한국 대사관은 없다. 이웃나라 스페인에 주재하는 우리 대사가 안도라 대사를 겸임한다. 안도라 역시 한국에 상주 공관을 개설할 필요성은 못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28일(현지시간) 안도라를 방문해 국기를 손에 쥔 어린이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은 안도라의 공동 군주(Co-Prince)를 겸임한다. AFP연합뉴스

안도라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 동부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중세 유럽에서 스페인의 가톨릭 우르헬 교구 주교와 프랑스 국왕이 안도라의 공동 군주를 맡기로 합의가 이뤄진 뒤 수백년 동안 헌법처럼 지켜지고 있다. 그 사이 프랑스가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뀜에 따라 안도라 군주 지위를 프랑스 대통령이 승계한 점만이 유일한 변화라고 하겠다. 오늘날 스페인 주교와 프랑스 대통령은 나란히 자신의 대표자를 안도라에 파견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의례적 역할만 수행할 뿐 안도라 국정을 총괄하는 주체는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어떻게 스페인, 프랑스처럼 크고 강한 국가들 사이에서 살아남았을까. 먼저 ‘스페인인’ 또는 ‘프랑스인’과 구별되는 ‘안도라인’의 정체성을 지닌 주민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언어도 스페인어나 프랑스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를 공용어로 쓴다. 비록 상비군은 없으나 대신 전 국민이 예비군이나 다름없다. 1992년 안도라 현지를 취재한 한국 기자는 “안도라는 주민 스스로 지킨다”라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안도라는 남녀를 불문하고 총기를 소지할 수 있으며 유사시에는 모두가 목숨을 걸고 지킨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수백년간 강국 사이에서 독립을 지킨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28일(현지시간) 안도라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스페인의 가톨릭 우르헬 교구장 호셉-루이스 세라노 펜티나트 주교와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안도라의 공동 군주(Co-Prince)에 해당한다. EPA연합뉴스

28일 안도라의 국가원수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안도라를 찾아 주민들의 열띤 환영을 받았다. 프랑스는 독일과 더불어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지도국인 반면 안도라는 유럽의 다른 소국인 리히텐슈타인, 산마리노, 모나코 등과 더불어 EU 회원국이 아니다. 하지만 유로를 화폐로 쓰는 만큼 사실상 EU 경제권에 속한다. 이날 마크롱은 안도라를 “프랑스의 자부심”이라고 부르며 안도라와 EU의 연대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안도라의 국익과 정체성을 존중하고, 안도라는 유럽에 더욱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도라 국민 입장에선 마크롱의 이번 방문을 ‘왕의 귀환’으로 받아들였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