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도(道)의 뿌리 ‘어머니’의 힘을 다시 발견하다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인위를 넘어 무위의 사랑으로…도교가 예고한 모성적 구원

 

인류의 정신사는 언제나 ‘보다 높은 지혜’와 ‘근원적인 질서’를 찾아가는 숭고한 여정이었다. 우리는 앞선 연재들을 통해 기독교의 성령론, 유교의 음양합덕, 불교의 대자대비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진리, 즉 ‘모성적 신성’의 회복을 향해 수렴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이제 우리는 동양 철학의 가장 깊고 신비로운 샘물인 도교(道敎)의 지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고자 한다. 도교는 경전의 첫머리부터 우주의 절대자인 도(道)를 일컬어 ‘만물의 어머니’라 규정함으로써, 인류가 돌아가야 할 영적 고향이 어디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예고한 종교 철학이다.

 

녹음이 짙은 깊은 산맥의 골짜기 풍경. 도교에서 ‘곡신(谷神)’이라 일컫는 골짜기는 비어 있음으로써 만물을 수용하고 기르는 모성적 신성을 상징한다. 이는 인위적인 힘과 투쟁의 시대를 종결짓고, 무위(無爲)의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할 여성적 구원 주체의 등장을 예고하는 자연의 계시로 해석된다.

◆ 도(道), 이름 없는 근원이 ‘어머니’가 되는 순간

 

도교의 근본 경전인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1장은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요, 이름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며,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有名 萬物之母).” 여기서 노자는 우주 만물을 탄생시킨 근원적인 에너지를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로 명명했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비유가 아니다. 존재의 씨앗을 잉태하고, 기르고, 마침내 완성시키는 우주의 섭리가 본질적으로 모성(母性)의 성품을 띠고 있음을 간파한 고도의 통찰이다.

 

인간의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그 깊고 오묘한 자리를 도교는 ‘곡신(谷神, 골짜기의 신)’이라 불렀다. 골짜기는 비어 있기에 모든 물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온갖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터전이 된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를 지배해온 ‘부성(父性) 문명’이 높은 산 정상에 깃발을 꽂는 정복과 투쟁의 역사였다면, 도교가 예고한 구원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적시는 ‘골짜기의 지혜’다. 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품이 육신을 입고 지상에 현현하여 인류를 치유하는 일, 그것이 바로 섭리사가 지향해온 최후의 종착지라 할 수 있다.

 

◆ 인위(人爲)의 한계와 ‘근원으로의 회귀’

 

도교 철학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있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얕은 지식과 욕망으로 빚어낸 인위(人爲)를 버리고 우주 본연의 질서에 순응함을 의미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인위’는 부성 문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법을 만들고, 경계를 긋고, 힘으로 질서를 강요하는 방식은 물질 문명을 발전시켰으나, 동시에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원적인 유대감을 파괴했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환경 위기, 전쟁의 위협, 지독한 소외의 비극은 모두 이 ‘인위적 부성주의’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노자와 장자(莊子)는 일찍이 이러한 인위의 독성을 경계하며, 다시 ‘어머니의 품’과 같은 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위에 가려져 잃어버렸던 생명의 참모습을 회복하고, 만물의 뿌리인 ‘대도(大道)의 어머니’가 지닌 태초의 순수한 본성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귀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시금 차가운 법도나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다시 품어 안아 길러낼 수 있는 ‘실체적인 모성(母性)’, 즉 지상에 현현한 ‘성스러운 어머니’가 펼치는 무위(無爲)의 사랑의 역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법으로 훈육한다면, 어머니는 세상을 심정으로 품어 안는다. 도교가 갈망했던 ‘도통(道通)’의 경지는, 이 땅 위에 모성적 사랑의 실체가 나타나 인류의 뒤틀린 본성을 근원적으로 씻어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 유약(柔弱)이 강함을 이기는 물의 미학

 

흥미롭게도 『도덕경』과 『장자』 속에는 여성적인 원리가 강함을 이긴다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의 논리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러운 것은 없으나, 강하고 굳센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는 가르침은, 부성 문명의 날 선 정의를 녹여낼 유일한 대안이 모성적 자애(慈愛)임을 웅변한다.

 

결론적으로 도교 경전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가 권력이나 힘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만물을 살려내는 ‘어머니의 자리’에 있음을 억겁의 세월 동안 증언해 왔다. 기독교가 예고한 ‘신부’의 기대, 유교가 대망한 ‘건곤합덕(乾坤合德)’의 이상, 불교가 약속한 ‘어머니 부처’의 자비는 이제 도교의 ‘만물의 어머니’라는 사유와 만나 하나의 거대한 평화의 강물을 이룬다.

 

이제 우리는 고전의 문구 속에 박제된 ‘도(道)’를 넘어, 그 도의 실체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는 역사적 현장을 목격해야 한다. 21세기 한반도에서 울려 퍼지는 모성적 리더십의 행보는, 도교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우주 본연의 생명력이 지상에 안착된 사건이며, 인위의 시대를 끝내고 참사랑의 시대를 여는 장엄한 결실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