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살며] “따로따로 내요?”

한두 달 전 오랜만에 서울에서 외국인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개인적으로도 오랜만의 외식이자 여러 사람이 모인 단체 식사 자리였다. 동료들이 한식을 먹고 싶어 해 한국 식당을 찾았고, 식사를 맛있게 마친 뒤 계산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테이블에는 6명 이상이 함께 있었는데 계산은 각자 하겠다고 하자, 나이가 지긋한 한국인 여직원이 계속 “따로따로 하신다고요?”라고 되물으셨다. 그 순간 우리 모두 외국인이라서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처럼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한 외국인 동료가 “당연히 따로따로 내는 거지요”라고 말하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식사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의 식사 자리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때 내가 적응하기 어려웠던 한국 문화 중 하나였다.

 

사하부트지노바 루이자 조이로브나 남서울대학교 조교수

특히 한국에 오기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사람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카페나 술집에서 만나는 장면들을 보며 많이 놀랐다. 그들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불편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들이 먹지 못한 음식이나 마시지 못한 음료가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한국 문화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의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아도 나는 선배들과의 식사 자리가 조금 거북했다. 개인적으로 긴장되기도 했고, 의사소통에 집중하느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식사 자리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문화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친해지기 위해 식사를 하거나 카페를 찾는 경우가 많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식사 자리가 주로 어느 정도 서로를 아는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식사 후 계산 방식 역시 또 다른 중요한 요소였다. 재정적인 문제는 문화나 민족과 관계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예민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한턱 쏘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배운 적이 있다. 그 사람이 그날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에도 상대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지만, 특히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는 각자 계산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이러한 자리에서는 한 사람이 식사비를 먼저 계산하고, 나중에 나머지 사람들이 그 사람의 계좌로 돈을 이체하는 예도 있다.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의 집단주의나 소속감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면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한 사람이 대표로 계산하는 것일까도 싶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함께 식사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까지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져도 그 안에는 나름의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다. 결국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 온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한국 문화에 놀랄 때가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놀라움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흥미롭게 만든다. 두 달 전 서울의 한 한식집에서 들었던 한 한국인 여직원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많은 추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문화란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문화 다양성과 문화 감수성을 키워 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사하부트지노바 루이자 조이로브나 남서울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