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엎친 데 중동전쟁 덮쳐… 건설사 1000여곳 ‘셧다운’

한계 내몰린 중소건설사들

1분기 폐업신고 1088건 17.6% ↑
금리 상승에 미분양 적체 이어져
중동사태로 물류·자재비 치솟아

자금력 격차 따른 양극화 심화
지방 중소·중견사 위기 현실로
사업 수주 놓고 내부 경쟁 격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여파로 인한 공사비 급등과 지방 주택 미분양 누적이 겹치면서 올해 1분기에만 문을 닫은 건설업체가 1000곳을 넘어섰다. 자금력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해지며 중소 건설사일수록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29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건설업 폐업 신고 건수는 1088건으로 전년 대비 17.6% 증가했다. 2020년 694건에서 2023년 945건, 2024년 998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000건을 넘어섰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자재비·물류비가 지속적으로 오른 데다 국내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며 건설사들의 어려움은 가중돼 왔다. 금리 상승과 분양 부진까지 더해져 자금 부담도 커졌다. 올해 들어선 중동전쟁으로 유가와 해상 물류 비용이 치솟으며 건설사들의 사업 여건은 더욱 악화됐다.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중소·중견 건설사의 자금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광주·전남에서는 유탑건설 등 유탑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지난 20일 서울회생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파산 수순에 들어갔다. 유탑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내 중견 건설사다. 한국건설과 남양건설, 영무토건, 삼일건설 등도 회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중견건설사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분양 적체는 건설사를 짓누르는 고질적인 문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3만1307가구로 14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미분양 물량의 86%가 비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 건설사의 자금 부담이 커진 것이다. 일부 건설업체는 분양 지연으로 자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에서 공사비 부담까지 떠안으며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최근 들어 더 커진 자재 수급 불안은 건설사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월 자재수급지수는 74.3으로 전월보다 16.7포인트 하락하며 도입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자재수급지수는 건설 현장에서 체감하는 자재 확보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낮을수록 수급 여건이 악화된 것을 의미한다.

중견 건설업체 A사 관계자는 “중동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유가와 물류비 부담이 남아 있어 공사비가 쉽게 떨어지기 어렵다”며 “건설사들의 비용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환율 상승이 원자재 생산과 운송 비용 전반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정부도 공사 중단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응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관계 부처와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지난 23일 전국 274개 공사현장을 점검했다. 그 결과 일부 현장에서 자재를 제때 확보하지 못해 공사가 지연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위기에 내몰린 건설업체들을 중심으로 수익성 높은 사업을 따내려는 경쟁도 심해졌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종합건설업체(전체 공사를 총괄하는 업체)와 전문건설업체(공정별로 나눠 시공하는 업체) 간 업역 구분 폐지를 둘러싼 업계 갈등도 커지고 있다.

B사 관계자는 “건설업은 업황이 꺾일 때마다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사는 버티고 중소 건설사는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조가 반복된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재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도급 비중이 높고 자금 여력이 취약한 전문건설업체들이 먼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이 무너지면 전체 건설산업으로 충격이 확산되고, 민간 공사에서 공사비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