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정 장관 ‘정보 유출’ 논란이 던진 화두

미, 한국과 정보 공유 빗장 걸어
정보 공유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
한·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충돌
불확실성 커진 동맹 재설계 시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정보 유출’ 논란이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다. 정 장관은 지난달 6일 국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평안북도 구성’을 지목했다. 그러자 미국은 이를 ‘미국이 알려준 기밀 누설’로 받아들여 한국과의 정보 공유에 빗장을 걸었다. 이달 초부터 미국 정찰위성이 포착한 북한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정보 제공 등이 한 달째 중단됐다는 전언이다. 주한미군의 서해 독자 공중훈련 등 그동안 쌓인 갈등의 노정(露呈)이 덧대지며 더욱 부각됐다. 이런 정보 공유가 장기간 제한되면 대북 감시망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시비비를 따지기 이전에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되묻게 된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 사안과 관련해 “정 장관은 오픈소스(공개된 정보)에서 취득한 것을 얘기했다는 것이고, 미국은 자기들이 준 정보가 흘러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양국 간 인식 차이를 설명했다. 정보의 해석과 활용 방식에서 비롯된 충돌이라는 의미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국무회의에서 “왜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체 방위가 어려운 것 같은 불안감을 갖느냐”며 건넨 한마디가 자칫 갈등을 더 자극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박병진 논설위원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의 실수나 정치적 논쟁을 넘어 한·미 간 정보 공유 구조의 문제를 드러낸다. “정보란 적과 적국에 관해 가진 모든 지식이며, 아군의 생각과 행동의 기초가 된다.” 프로이센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의 한 구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미국의 정보 관리 방식은 신중하며 민감하다. 동맹국과도 정보를 공유하지만 그 범위와 깊이는 철저히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조절한다. 반면 한국은 높은 안보 의존도 탓에 미국을 향해 더 많은 정보 제공과 접근을 요구해 왔다. 이 비대칭성은 종종 갈등의 씨앗이 됐고, 이번 논란 역시 그런 긴장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례로 볼 수 있다.



정보는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정책 방향을 규정하는 힘이다. 누가 정보를 갖고, 어떻게 공유하며, 어떤 맥락에서 활용하는가는 곧 주도권 문제로 이어진다. 더구나 최근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으로 전략적 부담이 커진 상황이 아니던가. 동맹이랍시고 ‘강 건너 불구경’해 온 한국의 기밀 누설이 달가워 보일 리 있겠나 싶다.

한·미 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신군부의 강경 진압을 사실상 승인했다는 인식은 한국 사회에 깊은 불신을 남겼다. “동맹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2002년 미선·효순양 사건은 주권 논쟁으로 번졌고 동맹의 균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같은 갈등 역시 동맹이 ‘공동의 안보’뿐 아니라 ‘비용과 책임’이라는 현실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우리의 외교·안보전략이 정권교체 때마다 롤러코스터 타기를 반복해 온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보수는 한·미동맹, 진보는 자주와 평화를 외쳤다. 치우침이 컸다. 이러한 불균형이 한쪽에선 불신을 키웠고, 다른 한쪽에선 과도한 의존으로 작용했을 터.

동맹은 공동의 위협 앞에서 강화된다. 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순간 균열이 드러난다. 한국이 자율성을 확대하려 할수록 미국은 동맹 관리 차원에서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구조적 긴장의 연속이다.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한·미동맹 속에서 한국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이런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한·미의 외교·안보 마찰은 그 형태를 바꿔 가며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미동맹은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다. 상호 배려와 고도의 정치적 수위조절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중동전쟁으로 기존 국제질서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더 심화했다. 미국은 이제 더는 동맹국에 신뢰와 비전을 제공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에 기초한 동맹의 외교·안보전략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정 장관 정보 유출 논란이 던진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