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오 14세 교황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거론하며 비판을 이어갔고,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지도자 중에서 이례적으로 교황을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의 갈등은 미국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면서, 동시에 종교 권위와 정치권력이 충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이 같은 미국 국적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 같은 정치와 종교의 충돌은 11세기 같은 국가 출신의 황제와 교황이 갈등을 벌이다가 황제가 접고 들어간 ‘카노사의 굴욕’과 닮았다.
◆트럼프 vs 교황… 한 발 물러선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의 갈등이 극에 달한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문명 파괴’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되자 “해협을 열지 않으면 이란 문명은 모두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오자마자 교황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이 급진 좌파의 눈치를 본다”고 하거나 “내가 백악관에 없었다면 그도 바티칸에 없었을 것”이라며 교황을 비난했지만, 평소 우호적이지 않은 인물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거나 조롱으로 일관한 것과 달리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흰옷을 입고 붉은 망토를 걸친 채 병든 누군가의 이마에 손을 올리는 마치 예수를 연상케 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올렸다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비난을 받은 뒤 게시물을 내리기도 했다.
◆트럼프 ‘막말’할수록 교황 권위↑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처럼 강공 일변도로 나서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여러 외신은 교황이 단순한 정치적 적수가 아니라, 초당적 호감도를 가진 도덕적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AP는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을 향해 전례 없는 무례한 언어로 미국 내 가톨릭계 전반에서 불쾌함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교황의 메시지는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의 갈등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현실주의와 종교의 도덕주의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막말’을 할수록, 교황은 반대로 도덕적인 권위가 올라간다고 AP는 평가했다.
이를 반영하듯 로이터통신이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36%로 트럼프 행정부 2기 이래 최저점을 기록했다. 반면 레오 14세 교황에 대한 긍정 평가는 약 60%에 달했다.
비슷한 시기에 AP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가톨릭 신자를 포함한 전체 미국인 중에서 약 44%가 교황에게 호의적이었고, 약 10%만 비호감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 모두에서 교황에 대한 비호감이 낮게 나타났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번 갈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와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간선거 앞두고 가톨릭 리스크
게다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미국 내 가톨릭 인구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성인 인구 중 가톨릭 신자의 비율은 약 20%로 개신교 신자 비율(약 40%)보단 낮지만 두 번째로 많았다. 경합주(스윙스테이트)로 분류되는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네바다주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25% 안팎으로 다른 주보다 높게 나타난 것도 특징이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은 아일랜드·이탈리아·폴란드계 미국인 비중이 높은 경합주들은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때 각별하게 여기는 ‘러스트벨트’와 상당 부분 겹친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을 공격할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분열되는 구조라고 외신은 분석했다. A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24년 선거 당시 가톨릭 인구의 약 54%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전통적인 트럼프 지지집단인 복음주의 개신교의 지지 경향(약 80%)과 대도시에 거주하는 주류 개신교 지지율(약 60%) 다음에 해당한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을 공격할수록 자신의 지지기반이 흔들리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각료인 J 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역시 가톨릭 신자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에 대해 대립각을 세울수록 가톨릭 정체성을 가진 공화당 핵심 인사들의 비호감도가 유의미하게 올라간다고 미 CNN방송은 분석했다.
존 그린 애크런대 정치학과 교수도 언론에 “이번 갈등은 단순한 정책 충돌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종교 권위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