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금색 천으로 덮인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감한 대통령님의 이름을 딴 함선에 걸려있던 그 종을 개인적 선물로 드리게 돼 매우 기쁩니다."
천을 걷어내자 '트럼프 1944'라고 큼직하게 새겨진 금색 종이 나왔다. 1944년 진수돼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국의 잠수함 HMS 트럼프호에 걸려있던 종이다.
찰스 국왕은 영국 특유의 아슬아슬한 농담도 여러 차례 던지며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모친인 엘리자베스 2세가 1957년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 방미했던 일도 거론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반발한 영국이 군사행동에 나서고 미국이 반발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모친이 방미해 관계 복원에 성공했던 일을 꺼낸 것이다.
찰스 국왕은 "거의 70년이 지나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나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고 농담했다. 이란 전쟁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연일 비난해온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다른 정상들 같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면전에 들이밀기 힘든 농담이었다. 평소 왕실에 대한 선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웃어 넘겼다.
찰스 국왕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대형 연회장을 지으려다 법원의 제동에 가로막힌 사건도 농담 소재로 썼다. '영국이 1814년 백악관 재개발을 시도했었다'고 언급한 것인데 영국군이 당시 워싱턴DC 곳곳을 불태웠던 사건을 상기시킨 것이다.
NYT는 찰스 국왕이 '트럼프 2세'를 겨냥한 외교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한 조화로운 연설을 했다며 영국 특유의 절제된 표현, 트럼프 대통령에 맞춘 농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대한 은근한 압박, '트럼프스러운' 화려한 선물이 만찬장을 가득 채웠다고 전했다.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을 '트럼프 2세' 군주처럼 대하며 현란한 외교를 펼쳤다는 의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역시 뼈 있는 말로 응수하는 순간이 있었다.
찰스 국왕에 앞서 건배사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노르망디 해변과 한국의 얼어붙은 언덕,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뜨거운 사막까지"라며 미국과 영국이 함께 싸운 지역을 거론하다가 "우리는 지금 중동에서 약간의 일을 하고 있는데 아주 잘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적이 핵무기를 갖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찰스는 나보다도 더 내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실권이 총리에 있기에 왕실은 국왕이 현안에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라는 표현을 쓰며 찰스 국왕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연출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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