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에 쏠린 돈…국방예산 ‘전면 조정’ 신호탄 [박수찬의 軍]

KF-21 양산, 늦춰지나 줄어드나
무장 강화로 수출 돌파 시도
핵잠·공군 사업까지 예산 충돌

내년도 정부예산을 둘러싼 ‘기싸움’이 정부 안팎에서 일찌감치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역대 최대 지출구조조정을 공언한 상태다.

 

KF-21 시제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방 분야도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방위력개선사업 중 규모가 큰 KF-21 전투기 양산 등이 조정 대상에 포함될 모양새다.

 

검증된 항공무장 추가나 소요 조정 등의 혁신적 대책이 없다면, KF-21을 포함한 방위력개선사업 전반에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KF-21 양산의 불확실성

 

일반적으로 KF-21 양산 규모는 공대공 위주인 블록1 40대, 공대지·공대함 능력을 확보한 블록2 80대로 알려져 있다.

 

이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다. KF-21은 첫 양산 물량인 블록1 40대가 2024∼2025년 각각 계약이 됐을 뿐이다.

 

경남 사천 소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KF-21 양산1호기가 조립되고 있다. KAI 제공

추가 생산은 방위사업청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제작업체와의 협상·계약에 따라 정해진다. 

 

문제는 예산이다. 기획예산처는 내년도 예산지침에서 고강도 지출구조조정 추진 방침을 밝혔다.

 

재래식 무기의 단순 성능개량 대신 드론 등 최첨단 무기에 집중 투자하는 것과 한국형 3축체계 고도화 원칙도 밝혔다.

 

이같은 기조 속에서 기존 관행대로 KF-21 블록2 양산에 곧바로 착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남 사천 소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관계자들이 KF-21 시제기에서 조종사를 내리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F-21은 지금까지 연구개발에 8조8142억원, 최초양산비는 8조3840억원이 배정됐다.

 

KF-21의 올해 양산비는 1조4000억원. 내년과 그 이후에도 올해보다 다소 높거나 비슷한 규모의 예산이 필요하다.

 

올해 방위력개선비는 약 20조원. 내년엔 최대 22조원 안팎까지 늘어날 수 있다. 약 2조원이 늘어나지만, 이 증가분은 KF-21 1년 양산비로 쓰면 사라진다.

 

강한 예산압박 기조에 직면한 방위사업청으로선 예산 증가분을 1개 사업에 다 투입하기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블록2 양산 착수시점을 1년쯤 늦추고 생산량을 조정, 예산 지출을 억제한다는 구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해외 협력 가능성도 거론된다. 블록2 80대 중 일부 물량을 국제 공동개발로 전환하고, 나머지 물량은 공군에 블록2 형태로 납품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동 지역에선 전자전 버전이나 5세대 스텔스 등 KF-21 파생형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들이 있다.

 

이들 국가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해당 국가가 원하는 KF-21 파생형을 판매하고, 남은 물량은 블록2로 생산해 공군에 납품하는 것이다.

 

KAI의 생산 물량을 보장하면서 방위력개선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타이푼 전투기 개발 당시 공동개발국이었던 영국도 자금 문제 등으로 자국 인수 물량 중 일부를 사우디에 판매한 바 있다.

 

하지만 기술 이전 범위 등을 둘러싸고 입장 차가 큰데다 변수도 많다. 노후한 F-5E를 빨리 대체해야 하는 공군은 기존 계획을 수정하려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실현 여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블록1이 20+20대로 계약된 것처럼 블록2 생산도 여러 차례, 오랜 기간에 걸쳐 분리 발주가 이뤄지거나, 블록2 생산량이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두고 대당 단가 유지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KF-21 시제기가 경남 사천 소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지상 테스트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F-21, 무장 강화로 활로 뚫어야 

 

이같은 상황은 KF-21이 내수 시장만 고려할 수 없게 한다. 블록2 개발·양산과 천룡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 등 기존 계획을 고수한다면 리스크는 더욱 누적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라팔 등 경쟁 기종이 전투기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는 것에 맞서려면, 검증된 공대공·공대지 무기를 KF-21 블록1에 최대한 많이 장착해 잠재 고객을 빠르게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KF-21의 손익분기점 달성도 빨라진다.

 

KF-21에 장착하는 미티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은 시장에서 성능을 입증했다. 관건은 장거리 지상공격능력이다.

 

KF-21에 장착할 국산 천룡은 최근 두 차례 시험이 실패했다. 추진체계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고객에게 기술적 신뢰를 완전히 심어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불확실하다.

 

따라서 성능 검증이 이뤄진 기성품 항공무장을 KF-21 수출용 기체에 서둘러 체계통합해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전시장에 놓여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공군 F-15K에서 쓰는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우크라이나가 독일 측에 지원을 요청했을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일반 폭탄이나 미사일로는 파괴하기 어려운 먼 거리의 벙커나 교량 등을 타격하기에 적합하다.

 

유럽 MBDA의 스피어-3 미사일은 크기가 작으면서도 140㎞까지 날아가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과 데이터 링크를 통해 다수의 미사일이 정보를 공유하며 협동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 전자전 버전도 개발되고 있다.

 

KF-21 블록1이 미티어·타우러스·스피어 미사일로 무장한다면, 블록2 전력화가 늦어지더라도 기술적 검증이 이뤄진 미국산 엔진과 유럽산 무장을 선호하는 제3세계 국가 등을 상대로 수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능이 검증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확보는 글로벌 트렌드다.

 

적 방공망 위협 범위 밖에서 안전하게 지상 표적을 공격하려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미 공군 지상요원들이 재즘(JASSM)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B-1B 폭격기에 탑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은 이란 전쟁 소모량을 체우기 위해 재즘(JASSM) 4300기를 주문했고,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를 도입한 인도는 스칼프 미사일을 선택했다. 독일도 타우러스 미사일 확보에 나선 상태다.

 

◆“모든 사업을 원하는대로 해줄 수 없다”

 

KF-21 외에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방위력개선사업이 적지 않다. 국방비가 늘어나도 예산 압박이 지속되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핵추진잠수함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핵추진잠수함 총사업비는 2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KF-21 연구개발·최초양산비를 합친 것보다 많다. 매년 투입해야 할 비용도 올해 KF-21 양산비를 넘어설 전망이다. 

 

다른 방위력개선사업도 현재 시점에선 비용이 적게 들지만 1∼2년 뒤 사업비가 폭증하는 구조를 지닌 것들이 있다.

 

때문에 군 안팎에선 내년도 정부예산에서 재래식 장비 성능개량·창정비를 포함한 대규모 신규 사업 반영 비중이 예년보다 많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진행중인 사업도 사업비가 최대 20% 정도 감액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공군 사업이다. 공군의 경우 KF-21 외에도 대형 사업들이 단기간 내 집중된 형태다.

 

공군 F-15K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F-15K 성능개량(약 4조원), F-35A 성능개량(9000억원), F-35A 추가 도입, 대형 수송기 2차(7100억원), 항공통제기 2차(3조원), 전자전기(약 2조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형미사일방어(KAMD)까지 더해지면 사업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공군 외에 장영실함(3600t급)보다 큰 장보고Ⅲ-배치Ⅲ 잠수함(5000t급) 확보와 유·무인복합첨단함정, 차기구축함(KDDX), 해양정보함 등의 해군 재래식 전력 분야 대형사업도 있다.

 

이를 두고 정부 내에선 군 당국의 소요 조정·결정 문제를 지적한다.

 

재정당국의 국방비 내 항공 프로그램 적정 증가율을 감안하면, 해당 분야 예산 규모는 2033년까지 5조원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공군과 합참 등이 예산 사정을 감안해 소요 조정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방위사업청에 사업을 넘겼다는 것이다. 공군은 KF-21 블록2 80대를 만드는 기존 방안의 조정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이 KF-21 사업 조정을 시도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공군 F-15K 전투기 편대가 지상 표적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공군 FA-50 경공격기(앞쪽)와 F-15K 전투기(뒤쪽)가 이륙을 위해 유도로로 진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소요 조정 문제는 국회 심의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석종건 당시 방위사업청장은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전력화할 무기는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항공기 관련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 어딘가에서 희생을 해야 한다”며 “합참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전력, 보완이 시급한 것들을 논의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소요를 한번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의 소요결정과 조정에 대한 문제를 방위사업청도 예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현 정부의 국방개혁에서 이같은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변수도 있다. 다음달 말까지 정부부처가 기획예산처에 예산요구서를 제출하면, 기획예산처는 내부 조정과 유관부처 및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거쳐 9월쯤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보낸다. 그때까지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부가 고강도 지출구조조정을 진행해도, 전반적인 정부 예산 규모가 감소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지출구조조정으로 확보된 여유 예산은 기획예산처가 국회 예산안 송부 전까지 부처별 사업에 재배정할 수 있다. 지방선거 직후 정국 향방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는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년도 방위력개선사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