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대부분을 도시에서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이 어떻게 예기치 않은 전환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에세이다. 강원도 영월의 작은 텃밭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단순한 귀농 체험기를 넘어, 상실과 애도, 그리고 삶의 재구성에 관한 기록으로 읽힌다.
저자는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바쁘게 살아오던 중,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상실을 맞는다. 고향에 남겨진 밭을 외면하지 못한 채 시작한 농사일은 ‘5도 2촌’이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로 이어지지만, 그 현실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농사는 서툴고,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자연은 결코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저자는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조금씩 ‘농사’라는 세계를 몸으로 배워간다.
모종을 심는 시기를 놓쳐 작물을 얼려 죽이고, 잡초를 제때 뽑지 못해 밭을 내주기도 하는 초보 농부의 일상은 좌충우돌 그 자체다. 비바람에 쓰러진 작물, 벌레와 짐승에게 빼앗긴 수확은 좌절을 안기지만, 동시에 저자는 깨닫는다.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수많은 변수와 기다림을 견디는 일이며, 그 끝에 맺히는 열매는 시간과 마음이 함께 빚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텃밭에서의 시간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바꿔놓는다.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이고, 너무 많이 와도 문제인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애써 키운 작물은 쉽게 무너지지만, 심지 않은 잡초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자라는 역설 속에서 저자는 자연의 질서와 삶의 균형을 배운다.
당연하게 여겼던 먹거리 하나에도 수많은 손길과 시간이 스며 있음을 깨닫는 순간, 타인의 수고를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동시에 아버지를 향한 애도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버지가 남긴 밭을 일구며 그의 삶을 되짚는다. 왜 새벽마다 밭으로 나갔는지, 왜 묵묵히 흙을 일궜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흙을 만지는 시간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다시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과정이 된다.
계절은 반복되고 씨앗은 다시 심어진다. 텃밭의 시간은 그렇게 이어지며, 서툰 손끝으로 시작된 농사는 어느새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작은 밭은 더는 생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돌보고 삶을 성찰하는 장소가 된다.
저자는 말한다. “삶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씨앗을 심는 일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실패와 상실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다정해지는 그의 일상을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