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맞이한 ‘노동절’은 63년 만에 되찾은 이름이다. 그간 ‘근로자의 날’로 익숙했던 기념일이다. 올해부터는 노동절이라는 이름으로 법정 공휴일이 됐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무원 등도 모두 쉴 수 있는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첫 노동절이다.
노동절의 기원은 140년 전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비롯됐다. 1886년 5월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모인 8만명의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의 개선을 요구하며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단행한 게 발단이다. 투쟁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노동자 8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국제 노동계는 다음 해 ‘만국 노동자 단결의 날(메이데이)’로 기념하며 시작됐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1일 당시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로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시작됐다. 이 행사에 참석했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등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노동 권리 쟁취를 비롯해 민족 해방 운동까지 더해져 의미가 깊었다.
◆해방 이후 좌∙우 갈등된 ‘노동절’
해방 이후 노동절은 큰 변화를 겪었다. 1946년 5월1일 노동절 행사는 노동단체들이 좌익∙우익 성향에 따라 나뉘어 열리면서 대립이 격화돼 혼란에 빠졌다. 이승만 정부는 6∙25전쟁 직후인 1958년 우익계 노동단체 대한노동총연맹의 창립일인 3월10일로 노동절의 날짜를 바꿨다.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배제하기 위한 의도였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3년에는 법 제정을 통해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유급휴일이라는 제도도 생겼다. 당시 경제적 효율을 우선시해 ‘근면’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명칭이 변경됐다. 북한에서 자주 사용하던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도 반영됐다. 이후 약 30년간 근로자의 날이라 불리며 3월10일에 기념됐다.
◆노동계 “‘근로’는 수동적, ‘노동’은 주체적”
김영상 정부 시절인 1994년 5월1일로 날짜가 다시 바뀌었는데, 이름은 그대로 유지됐다. 노동계는 꾸준히 명칭의 변경을 요구했다. 노동계는 “근로라는 단어는 ‘부지런히 일함’을 뜻하는 수동적 표현이다. 노동은 주체적 용어”라고 주장해 왔다.
아울러 보다 넓은 범위의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종속적 고용 관계에 있는 경우를 의미하지만, 플랫폼 종사자나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등 형태의 노동자들을 포함하지는 못했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출범 뒤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변경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회도 지난해 10월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31일에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도 제정되면서 전 국민이 노동절에 쉴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이날 63년 만의 노동절을 맞아 양대 노동단체도 대규모 집회를 열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2026 세계 노동절대회’를 열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등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대회 결의문을 통해 “1000만명이 넘는 기간제, 특수고용·플랫폼,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헌법의 노동삼권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전 조직적·전면적 투쟁으로 7월 총파업을 성사하고 원청교섭을 쟁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여의대로 일대에서 ‘제136주년 세계노동절 기념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인공지능(AI) 확산은 일자리를 바꾸고 있고, 기후 위기와 산업전환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우리는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노동이 배제된 변화를 거부한다”며 “노동이 배제되지 않고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