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격노” 찌라시까지… 재계 뒤흔드는 하이닉스 성과급 비화

파격 소리 들었던 SK하이닉스 성과급
삼성전자 “하이닉스를 본받아라”
역대급 성과급 어떻게 받게 됐나
“최태원 회장이 성과급 협상 결과를 듣고 격노했다고. 협상에 임한 임직원 모두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경기 이천시 SK 하이닉스 본사 모습. 뉴시스

지난해 9월부터 재계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 성과급 협상이 이뤄진 후 결과에 격노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사 협상에 임한 SK하이닉스 임원진을 모두 해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소문은 한동안 진실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SK하이닉스와 노조와의 협의는 ‘파격’ 그 자체였다.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상한선을 없앤다는 내용. 회사 성과에 따라 직원이 성과급으로만 몇 억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단 파격적인 협상에 재계는 술렁였다. 많은 재계 관계자들이 경영진이 당연히 대노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서 진위여부를 확정짓기도 전에 이미 소문은 마치 사실인양 퍼져나갔다. 소문의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다. 최 회장은 격노하지도 않았고, 협상에 임한 임직원들은 여전히 SK하이닉스에 잘 다니고 있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올라온 SK하이닉스 회사 정기 보고서에 따르면 노사문제를 담당하는 기업문화담당 임원 명단은 협상 전 후 큰 차이가 없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탓에, 하이닉스 직원들은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했다.

 

파격적인 협상의 여파는 시간이 지난 현재도 사그라 들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리고 각 기업들이 역사적인 ‘성과급 투쟁’의 단초가 됐다. 특히 역대급 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는 “하이닉스만큼 달라”며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재계를 뒤흔들 정도로 막강한 결과를 낳았지만, 사실 하이닉스도 현재 체제를 갖추기 전까지 노사 간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젊은 직원이 직접 경영진에 성과급 체계 개선을 요구하는 ‘상소문 파동’까지 일기도 했다. 더 이상의 갈등은 위험하다 판단한 노사가 ‘지속가능함’과 ‘정당한 보상’의 균형을 갖춘 체계를 갖추고자 대화를 지속한 결과 합의에 도출할 수 있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뉴스1

◆최태원 회장님! 투명한 성과급 체계를 마련해 주십시오

 

SK하이닉스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적으로 터져 나온 시기는 2021년이다. 그 전에는 지급 여부를 둘러싸고 노사간 줄다리기 식 협상은 진행했었지만, 회사 내부의 문제로 그쳤을 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갈등이 외부로 표출된 것은 이른바 ‘MZ 상소문 사태’로 알려진 한 젊은 직원의 이메일이다. 입사 4년차, 한창 회사에선 막내급으로 불리는 한 직원이 그룹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이석희 당시 하이닉스 사장을 상대로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성과급 책정의 기준이 되는 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하이닉스는 2020년분 성과급을 기본급의 400%, 연봉의 20% 수준으로 공지한 데서 시작됐다. 경쟁사인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연봉의 47% 수준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고 하자 SK하이닉스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액수보단 체계를 문제 삼았다. 액수는 상관 없으니 성과급을 어떻게 책정하는 지 알려달라는 여론이 터지기 시작했다.

 

내부가 들끓을 무렵, 신입 직원이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를 요구하는 항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이 직원은 사내게시판에도 같은 내용을 올리며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를 공론화했다. 상소문 사건을 계기로 직원들의 산정 기준 투명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최태원 회장이 SK하이닉스에 받은 연봉을 직원들을 위해 내놓겠다고 말했지만 거센 요구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해, 하이닉스 노사는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한다는 파격적인 협상을 타결한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산정한 지표로 성과급 기준을 정하는 게 아닌, 공개된 기준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역사적 협상의 효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2022년부터 코로나19를 비롯한 세계 경기 둔화로 인해 반도체 경기가 얼어붙은 탓이었다. 회사는 2023년 적자를 기록하며 실적이 곤두박질 쳤다. 성과급 잔치는커녕 생존이 급한 시기가 됐다. 성과급 논의는 잠잠하게 된다.

 

사그라들었던 성과급 논의는 인공지능(AI) 시장 개화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한 반도체 시장이 부활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성과급 상한’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고, 회사는 여기에 난색을 표했다. 기나긴 협상 끝에, 노사는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그리고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 결과 올해 초 SK하이닉스 직원들은 기본급의 2000%가 넘는 성과급을 손에 쥐을 수 있었다.

 

SK하이닉스 협력업체 노동자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SK하이닉스 3공장 앞에서 원청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도 성과를 나눠달라” 남은 과제 아직도 있다

 

노사간 협의로 성과급 체계를 일찍이 정비한 덕에, 올해 겪는 성과급 투쟁에서 SK하이닉스는 한 발 비껴갔다. 경영학계나 재계에선,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사례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갈등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남은 과제도 여전하다.

 

우선,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역대급 성과급을 본사 직원만 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지난달 30일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급 차별 지급을 중단하라”며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피앤에스로지스지회 등 조합원 30여명은 이날 오전 청주 SK하이닉스 3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하이닉스 안의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은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피앤에스로지스는 SK하이닉스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경기 이천 사업장 등에 운송하는 회사다. 조합원들은 “지난해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최고치를 기록한 SK하이닉스는 직원들에게 수억원의 연봉과 성과급을 줬다”며 “반면 하청노동자들에게는 500만∼600만원 수준의 상생장려금을 지급했다”고 했다. 이어 “이는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찬란한 성과를 만들어냈음에도 여전히 하청 노동자들을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라며 “하이닉스는 하청노동자들의 절규와 외침을 외면하지 말고,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하이닉스에 교섭 요구서를 제출했으며, 청이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낼 예정이다.

 

막대한 성과급을 직원에만 주지말고, 사회에 환원하란 압박도 나온다.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사상 최대 실적과 관련해 “농어민 환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대급 호황이 농어민의 희생덕에 가능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삼성전자 노조 협상 결과도 변수다. 만약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 재원 활용을 삼성전자측이 받아들인다면, 하이닉스도 현행 10%에서 상승을 요구하는 등 논의가 터져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