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2월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키티호크에서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이 성공했다. 흔히 ‘라이트 형제’로 불리는 형 윌버 라이트(1867∼1912)와 동생 오빌 라이트(1871∼1948)에 의해 ‘플라이어’로 명명(命名)된 비행체가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자체 동력을 추진력 삼아 하늘을 난 것이다. 정작 미국인들은 이 의미 있는 발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영국, 프랑스 등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유럽은 신생 독일 제국의 거침없는 군비 확장으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영국·프랑스 군부는 비행기의 군사적 활용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다. 20세기는 물론 현 21세기 들어서도 전투기를 주축으로 한 공군이 전쟁을 주도하는 것을 보면 비행기의 운명은 탄생과 동시에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승승장구하며 프랑스까지 평정한 나치 독일의 진군은 1940년 6월 영불해협 앞에 멈추고 말았다.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명령한 섬나라 영국 상륙작전을 위해선 먼저 해협과 영국 상공의 제공권을 독일 공군이 잡아야 했다. 그때부터 대략 1940년 11월까지 영·독 양국 공군 간에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영국 전투’(Battle of Britain)라고 부른 이 싸움에서 영국이 이기며 독일군의 영국 상륙은 좌절했다. 독일로선 2차대전 개전 이래 처음 맛본 쓰디쓴 패배였다. 처칠이 몇 안 되는 영국 공군 조종사들을 향해 “인류 분쟁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연합국 국민)이 이토록 적은 사람(영국 조종사)에게 이렇게 많은 빚을 진 적은 없었다”는 찬사를 바친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15년 12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경북 예천의 공군 제16전투비행단을 찾아 장병들을 위문했다. 16전비는 전투기 조종사 훈련 기능을 수행하는 부대다. 대법원장 일행을 영접한 비행단장(준장)은 “훌륭한 조종사들이 여기서 열심히 훈련하고 돌아가지만 민간 항공사로 이직해 매우 아쉽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남아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다들 소명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에 양 대법원장은 “법관들이 변호사 개업으로 법원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며 “법관도, 조종사도 다들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화답했다. 판사 출신 ‘전관’(前官) 변호사들을 공군 출신 민항기 조종사들과 비교한 셈인데, 당사자들이 과연 수긍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공군이 3일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가 눈길을 끈다.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약 10년간 자진해서 전역을 택한 숙련 조종사가 총 896명이란 내용이다. 공군을 떠난 조종사들 중 622명(69.4%)는 대한항공, 147명(16.4%)은 아시아나항공에 각각 새로 둥지를 틀었다. 조종사 1명 양성에 드는 비용은 최소 12억원(C-130J 수송기)부터 최대 61억원(F-35 스텔스 전투기)에 이른다. 이들이 민간 회사로 옮긴 이유를 살펴보니 민항기 조종사와의 소득 격차, 고난도·고위험 임무 및 비상대기 지속에 따른 스트레스, 잦은 인사 이동과 그에 따른 이사 등으로 나타났다. 양 대법원장 말처럼 애초에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을 뽑으면 좀 나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