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선 타인 배려 일상 출근길 전철선 180도 달라져 도쿄 출퇴근 집중 사회 문제로 서울도 같은 고민… 정책 절실
지하철역과 연결된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5층으로 향하던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춰 다른 누군가 탄다. 열에 일곱은 “스미마센”이라고 한다. 스미마센은 뭔가 실례했을 때, 양해를 구할 때, 종업원을 부를 때, 다종다양한 상황에서 쓰인다. 이 경우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중간에 멈추게 해 당신의 가는 길을 방해하게 됐다, 정도의 의미를 내포한 가벼운 인사라고 이해할 뿐이다.
공통 목적지인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또다시 생경한 상황이 펼쳐진다. 1층에서 탄 이가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내가 내리기만을 기다린다. 먼저 내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목례한 뒤 얼른 내린다. 쇼핑몰 같은 대중 공간이 아닌, 회사 건물이나 맨션 같은 공간에서 더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유태영 도쿄 특파원
이런 엘리베이터 예절에 대해 일본 지인에게 물었더니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몸에 익은,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이라고 한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병적으로 기피하는 문화의 영향도 섞인 것 같다.
이런 일본인의 모습이 180도 달라지는 곳이 있다. 출퇴근 시간대 도쿄 도심부 전철 안이다. 비집고 들어갈 공간을 찾기도 어렵고 잘 비켜주지도 않는다. 정시 출근이라는 지상과제 달성을 위해, 알아서 밀고 들어가고 알아서 밀고 나온다. 평소 수없이 듣는 “스미마센” 소리도 없다. “전철만 타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못생겼나 했는데… 감정이 못생겼던 거였어.” 요즘 방영하는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 말이 딱 와 닿는다.
‘통할 통(通)’ 대신 ‘아플 통(痛)’자를 쓰기도 하는 도쿄 통근지옥의 실태가 생생히 드러나는 책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5년 3월 20일 발생한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피해자 약 60명을 인터뷰해 펴낸 ‘언더그라운드’이다.
“마치야에서 오테마치까지는 거의 지옥이에요. 손도 꼼짝할 수 없습니다. 한번 손을 올리면 그 자세로 끝까지 가야 하니까요.”(가자구치 아야·당시 23·여) “기타센주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탈 수가 없습니다. 전차 두 대를 그냥 보내고 타도 자리에 앉지 못합니다.”(도키타 스미오·당시 45)
등장인물 상당수는 도쿄가 아닌 사이타마, 지바, 가나가와현에 산다. 도쿄 집값이 너무 비싸서다. 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도쿄행 급행 전차 시각에 맞춰 출근길에 나선다. 이들을 태운 열차는 관공서가 밀집한 가스미가세키역 등에서 사건과 맞닥뜨린다. 누군가 축 늘어진 모습을 보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자신의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을 겪으면서도 ‘술 취한 사람인가 보다’, ‘오늘은 빈혈이 심하구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직장을 향해 걸어간다. 늦지 않게 사무실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나중에 사건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황급히 병원으로 향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모습은 어떨까. 2025년 발표된 일본 국토교통성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도쿄권 혼잡률(아침 혼잡시간대 객차 적정 인원 대비 실제 탑승자 수)은 평균 139%였다. 1위는 도쿄 경전철 닛포리·도네리 라이너의 아카도초등학교앞에서 니시닛포리까지 구간. ‘어깨가 닿아 압박감이 있고, 문 근처 사람은 몸의 방향을 바꾸기 어려워진다’는 수준(180%)에서 딱 3%포인트 모자란 177%였다. 30년 전 200%가 넘던 혼잡률이 전철 신규 노선 설치, 긴 열차 편성 등으로 완화됐고 코로나19 대유행기엔 재택근무·시차출퇴근제 활성화 등으로 평균 107%까지 뚝 떨어졌지만, 다시 상승 추세다.
서울은 도시철도 혼잡도가 150%를 초과하는 구간이 3월 초 11곳에서 4월 초 30곳으로 증가해 통근시간대 위주로 전철·버스 운행을 늘린다고 한다.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는 교통체증 해법을 두고 도로 인프라 확충이냐 유연근무제 확대냐 사이에서 논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돈과 사람, 각종 편의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을 그대로 놔둔 채 과연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싶다. 그보다는 지방을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정책이 활발히 논의되고 더 조명받는 6·3 지방선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