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조선업에는 ‘호황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파로 같은 물량을 운반하는 데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해지면서 신규 발주가 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노후 선박 교체 수요와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한 고부가 친환경선 발주가 늘면서 선가가 오른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조선업 ‘슈퍼사이클’ 국면이 열리며 한국 조선업체들의 실적 개선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3일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 세계 누계 발주 및 수주는 1758만CGT(표준선 환산톤수·554척)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 늘었다. 호르무즈해협 대신 우회 항로를 택한 선박이 늘면서 운항 거리가 길어지고 선박 1척당 운송 횟수(회전율)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복 20일이 걸렸던 운항 기간이 40일로 늘어나면 같은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배를 2배로 더 띄워야 한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에 따른 호르무즈해협 통항 차질이 전 세계 선사의 신규 발주를 증가시키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중동 전쟁이 조선업을 새롭게 반등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간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올해 조선 3사의 합산 매출과 영업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찍을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3사 합산 연간 매출을 약 59조8395억원, 영업이익은 약 8조4853억원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 한국 조선업계의 최대 실적은 조 단위 해양 플랜트 수주가 쏟아졌던 2010년대 초반에 기록한 52조원이었다. 올해는 60조원을 넘볼 정도로 역대급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다. HD한국조선해양의 올해 1분기 누적 수주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0.2% 증가한 63억9000만달러(잠정)를 기록하는 등 조선 3사는 향후 3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수주가 실적에 반영되는 시차를 고려하면 앞으로 5년은 실적 호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처럼 단순히 발주만 늘어난 게 아니라 LNG 운반선과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 등 고부가 선종 비중이 늘면서 같은 물량을 건조해도 더 높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은 변수로 남아 있다. 지난 1월 중국 조선업체들은 한국보다 더 많은 LNG 운반선을 수주하기도 했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인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통해 미국과 우방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한화오션과 HD한국조선해양은 미국의 군함, 삼성중공업은 FLNG 분야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사로 협력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과 에너지 수요, 환경 규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조선업 업황이 구조적으로 개선된 만큼 당분간 견조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며 “다만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향후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