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주독미군 감축 명령이 유럽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5000명 규모로 안보 역량에 실질적 타격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감축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취임 이후 이미 시작된 미국과 유럽의 관계 재설정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물론 미·유럽 간 통상 갈등 재점화,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 완화를 예상하는 전망까지 나온다.
2일(현지시간) 미국 NBC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의 독일 주둔 병력 철수 명령에 대해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자주 방위 능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이날 dpa통신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미군 병력 철수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며 “유럽인들은 우리 안보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5개국 군사협의체를 통해 영국·프랑스·폴란드·이탈리아와 향후 과제를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병력 철수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유럽은 “충분히 강하지 않다”며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우리 지도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앨리슨 하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대변인은 엑스(X)에 “독일 내 전력 배치와 관련한 결정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과 소통하고 있다”며 미국의 이번 결정이 가질 충격을 애써 축소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동맹국들이 국내 총생산(GDP)의 5를 국방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이후 이미 진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 철수가 유럽 안보에 큰 타격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감축은 숫자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을 거치며 미국과 유럽 간 이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이 수면위로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2024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약속했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과 다크 이글 극초음속 미사일 부대의 독일 배치를 철회하기로 한 점을 독일 안보 전문가들이 안보 측면의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꼽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이 유럽 주둔 미군의 거점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무기 재배치와 주둔군 병력 감축이 단순히 독일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에서는 이번 결정이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 완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해온 유럽에 미국과의 관계 소원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인접국인 폴란드의 도널드 투스크 총리가 “유럽과 워싱턴이 점점 더 멀어지는 재앙적 추세를 되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과 유럽의 통상 갈등이 재점화될 여지도 다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주부터 유럽연합(EU)산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히자 EU도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미국이 (무역합의) 공동 성명과 일치하지 않는 조처를 한다면 EU의 이익 보호를 위해 우리의 옵션들을 열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에도 그린란드를 사이에 두고 미국은 덴마크,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그린란드에 군대를 보낸 8개국에 관세 10% 부과를 주장했고, 이에 EU는 수출 통제를 포함한 ‘무역 바주카(통상위협대응수단·ACI)’ 발동까지 논의하며 양측의 대립이 격화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을 철회하면서 갈등은 봉합됐지만 재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