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를 보는데 자꾸 작품 안내문으로 눈이 갔다. ‘인간 삶 그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안내문은 사실주의를 평범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흐름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말은 현장에서 취재할 때, 기사를 쓸 때 가장 먼저 붙드는 기준이었다. 익숙한 문구를 뜻밖에도 미술관에서 마주친 것이다.
기사에서의 ‘있는 그대로’와 그림에서의 ‘있는 그대로’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19세기 유행했던 사실주의는 단순히 사실을 사진처럼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전에는 성경 속 신화와 영웅이 화폭에 주로 담겼다면, 사실주의 흐름으로 바뀌면서 화가들은 노동 계층, 시골 풍경, 인간 삶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삶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점이 기자의 일과 겹쳐 보였다.
사실주의가 ‘무엇을 볼 것인가’의 기준을 바꿨다면, 21세기 인공지능(AI)이 만든 진짜 같은 가짜는 ‘무엇이 진짜인가’를 묻는다. 한때는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었다. 사진과 영상은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다. 언론사에서 독자와 시청자들의 제보를 받은 이유다. 지금은 본다고 해서 곧바로 믿을 수 없다. 의심과 확인이 그 사이를 가로막는다.
확인과 의심이 필요한 이유는 저널리즘의 상대가 너무나도 그럴듯한 가짜기 때문이다. 대전 오월드를 탈출해 국민의 걱정을 샀던 늑대 ‘늑구’의 AI 합성 사진은 이 변화가 현실이 됐음을 보여준다. 늑구 사진이 사람들을 속인 건 단지 AI 기술이 정교해서만은 아니다. 늑구가 대전에 실제로 있는 차도를 걷는 모습은 사실일 법한 장면이었다. 늑구 합성 사진은 허구였지만, 그 허구는 실제 장소와 실제 국민들의 불안을 빌려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AI가 만든 합성 사진과 허위 제보가 퍼지며 수색과 대응에 혼선을 줬다.
그렇다 보니 뉴스룸에서도 AI 기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약 한 달간 AI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서 시작된 논의는 저널리즘 신뢰를 어떻게 해야 해치지 않을 것인가로 이어졌다. AI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보다, 어떤 기사를 기자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 마느냐보다, AI가 끼어든 순간 어떤 절차로 신뢰를 지킬 것이냐다. AP통신은 지난해 말 온라인 사진·영상· 텍스트의 출처와 맥락, 조작 가능성을 검증하는 ‘AP 검증도구(Verify)’를 도입했다. AI 기술 도입 논의가 확인과 책임의 문제로 모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말만으로는 저널리즘을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옮기는 것이 ‘있는 그대로’가 아닐 수 있어서다. 이제 기자의 일은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진의 메타데이터를 확인해 조작 여부를 따져보고, 현장에서 이를 의심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AI 시대에는 가장 먼저 도착한 정보보다, 가장 늦게까지 확인한 정보가 더 믿을 만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장면을 보여주는 사람인 동시에 그 장면이 어디서 왔는지 끝까지 추적하는 사람. 어쩌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실확인주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