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여파로 중동산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중남미가 대체 공급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원유 수출이 4월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량도 2018년 말 이후 최대치로 뛰었다.
3일(현지시간) 에너지 데이터 업체 크플러의 자료를 인용한 미 경제방송 CNBC 보도에 따르면 4월 미국 원유 수출량이 하루 평균 520만배럴로 집계됐다. 이란 전쟁 발발 전인 2월 하루 390만배럴에 비해 약 33% 급증한 수치다. 크플러는 현재 매일 50∼60척의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이 미 항구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대비 두 배 수준이다. 이들 선박 상당수는 전쟁 전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했던 아시아 국가의 선박들이다.
베네수엘라의 4월 원유 수출량은 하루 123만배럴로 전월(108배럴) 대비 14% 증가했다. 월별 수출량으로는 2018년 말 미국이 베네수엘라 에너지 업계에 제재를 부과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다. 베네수엘라 원유의 최대 수입처는 미국으로, 하루 44만5000배럴을 들여왔고 인도(37만400배럴)와 유럽(16만5000배럴)이 뒤를 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 진출을 유보했던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최근 기술팀을 현지에 파견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이란 전쟁이 끝나더라도 연내 전 세계적으로 12억배럴 안팎의 원유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수출이 늘어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판매 대금을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 원유 판매 수익은 미 재무부 관리 계좌에 들어가며, 자금을 쓰려면 지출 계획을 담은 예산 요청서를 제출해 미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은 지난 2월 베네수엘라에 이체된 금액이 10억달러(약 1조4600억원)를 넘어섰으며, 향후 수주 안에 50억달러를 추가로 이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에너지시장이 요동치면서 미국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지만, 중국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이 석유 대금 등 결제에 중국 위안화를 사용하면서 전체 무역 거래에서의 위안화 결제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주도 국제결제 시스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대항마로 중국이 내세우는 ‘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IPS)의 결제 규모가 지난 3월 1조4600억위안(약 314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5년 전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도입을 추진 중인 이란은 통행료 지불 수단으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나 중국의 위안화를 제시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의 제재를 받은 러시아가 SWIFT에서 퇴출당한 뒤 위안화에 의존하게 된 것도 위안화 결제액을 늘리는 데 일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석유 거래 중 위안화 결제 비율을 늘리는 등 이란과 러시아 외 지역에서도 위안화 결제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이란 전쟁 이전보다 상승한 것은 이러한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니시야마 도루 다이이치생명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의 점유율은 조금씩 높아지고 위안화의 국제화와 달러 탈피 움직임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SWIFT에서 위안화의 결제 점유율은 3%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고 닛케이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