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사 60% “세입자 퇴짜 경험” [심층기획-사라진 전세, 주거의 자격]

서울시내 부동산 51곳 설문

집주인들 ‘임차인 선별’ 만연
기피 대상, 고령자 70% 최다
건강·돌봄 조건 확인도 53%

서울 시내 공인중개사 상당수가 ‘조건’을 들어 임차인을 거절하는 임대인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인들은 대개 노인이나 장애인을 거절했는데, ‘고독사’를 이유로 들었다. 방치된 취약계층 관리를 떠안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사실상 ‘임차인 선별’ 제도가 이미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5일 세계일보가 서울 시내 공인중개사 사무소 51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3일부터 21일까지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60.7%(31건)는 ‘가끔 또는 자주 임대인이 임차인을 여러 조건으로 거절한다’고 응답했다. 거절당한 임차인 유형으로는 고령자가 70.6%(36건)로 압도적이었다. 장애인은 23.5%(12건), 미혼모·부, 1인 가구도 각 2.0%(1건)로 뒤를 이었다.

 

기피 사유와 보완책을 묻는 질문에서는 돌발상황에 대한 우려가 두드러졌다.

 

응답자 54.9%(28건)는 고독사를 기피 사유로 꼽았다. 주변 민원이나 다른 세입자의 반응이 우려된다는 응답도 19.6%(10건)였다. 월세나 관리비 연체가 우려된다는 응답은 17.6%(9건), 주택 훼손 우려는 15.7%(8건)였다.

‘주거 취약계층 중개 시 일반 임차인보다 더 자주 요구 또는 확인되는 조건’에는 건강상태·돌봄 가능 여부가 53.0%(27건)로 가장 많았다. 보호자나 후견인 존재 여부는 37.2%(19건)이고, 소득·급여 증빙은 15.7%(8건)로 나타났다. 노인이나 장애인의 경우엔 보증금이나 월세처럼 절대적인 비용이 마련될 수 있는지보다 입주 후 관리에 대한 부담을 우려했다.

 

공인중개사들은 고독사를 한 번 경험하면 집주인들이 고초를 겪고, 이후 임차인을 가린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춘식(67)씨는 “고독사가 발생하면 집주인은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한다”며 “사회적 이슈가 되면 소문 나서 집도 잘 안 나간다”고 전했다.

 

역삼동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만난 60대 여성 중개사는 “임대인들도 나이가 많아서 자기 몸을 건사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옆 방에 노인이 죽기라도 하면 집에 냄새나고 정리도 어렵다”며 “자식들은 처음 한두 번만 챙기지 그다음부턴 안 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