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어떤 아이는 실내 체육관에서 개인 코치를 만난다. 또 다른 아이는 잠긴 학교 운동장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같은 도시에서 자라지만, 출발선은 이미 갈라져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이제는 그냥 흘려듣기 어렵다. 통계는 거주 지역의 체육 인프라 격차가 아이들의 출발선을 갈라놓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운동장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격차는 특히 강남 3구에 몰려 있다. 체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이 지역에서는 유망주들이 출발선부터 앞선다.
6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전국 공공체육시설 현황’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조사 자료를 종합하면, 스포츠 출발선은 이미 주거 지역에 따라 기울어져 있다. 서울 자치구별 1인당 공공체육시설 면적을 보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는 평균 1.85㎡로 서울 하위권 자치구(0.41㎡)보다 최대 4.5배 넓다. 이 격차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 여건과 인프라 축적 수준이 만든 구조적 차이다. 수영장·테니스장·실내 종합체육관처럼 부지 확보와 건립비용이 큰 시설일수록 강남권 쏠림은 더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격차 이면에는 행정 구조의 난맥상이 자리하고 있다. 지자체 재정자립도가 높을수록 정부 ‘국민체육진흥기금’ 매칭 사업 참여에 유리하다. 재정이 넉넉한 지역은 국비를 발판 삼아 시설을 더 늘릴 수 있지만, 재정이 열악한 곳은 경쟁에서 밀린다. 이 구조가 지역 격차를 키우는 ‘마태 효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시설이 들어선 뒤에도 ‘돈의 장벽’은 아이들의 앞길을 막는다. 공공체육시설이 운영 효율화를 이유로 민간 위탁으로 전환되면서 대관료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임오경 의원실이 확보한 ‘공공체육시설 위탁 운영 현황’에 따르면, 민간 위탁 이후 시설 이용료는 평균 30%, 최대 50%까지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과정에서 학생 선수들이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일반 대관에 밀리면서 어린 유망주들이 이용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강남권의 한 중학교 야구 현장에서는 학교 운동장이 소음 민원으로 사용이 제한되고, 인근 공공시설마저 동호인 대관에 밀리면서 학생들이 경기도 외곽까지 원정 훈련을 떠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훈련을 위해 왕복 수 시간, 길게는 4시간가량을 길 위에서 보내는 셈이다. 이동 거리와 교통비, 그리고 길 위에서 사라지는 시간이라는 ‘인프라 비용’이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물론 척박한 환경을 뚫고 성장한 스타들은 지금도 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시스템의 승리라기보다 개인의 처절한 사투에 가깝다. ‘개인의 투혼’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운 좋게 살아남은 천재’가 아니라, ‘인프라 벽에 막혀 사라진 수많은 재능’에 더 주목해야 한다. 가난한 동네의 천재적인 유망주가 훈련장이 없어 운동을 포기할 때, 한국 스포츠라는 국가적 자산의 가치는 하락한다. 이는 단순한 인재 손실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국내 프로 스포츠 시장의 위축과 국가대표 경쟁력 약화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스포츠 인프라는 단순한 여가 시설이 아니라, 기회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공공 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주소지가 선수의 미래를 좌우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한국 스포츠는 머지않아 ‘강남 8학군’ 출신들의 전유물로 굳어질 수 있다. 숫자는 효율을 말할 수 있지만, 스포츠 행정은 공정을 말해야 한다. 녹슨 골대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 출발선을 맞추는 과감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아이의 꿈이 행정에 의해 가로막히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