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빨간색부터 조립해 줘"… 말귀 알아듣고 스스로 일하는 'AI 로봇' 탄생

전문가가 밤새워 코딩을 입력해야만 움직이던 공장의 로봇이 이제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고 스스로 작업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지능형 파트너’로 진화한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지역 제조업의 지형도를 바꿀 혁신적인 인공지능(AI) 기술을 선보이며 자율제조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6일 한국전기연구원에 따르면 KERI 인공지능연구센터 이주경 박사팀이 국립창원대학교와 공동으로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여러 대의 로봇이 협업해 공정을 운영하는 ‘자율제조 다중 에이전트 AI’ 기술을 개발했다.

KERI 인공지능연구센터 연구진이 ‘자율제조 다중 에이전트 AI’ 기술을 점검하고 있다. KERI 제공

이번 성과는 단순 자동화를 넘어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Agentic) AI’를 제조 현장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의 공장 로봇은 미리 입력된 규칙에만 반응하는 수동적인 기계에 불과했다. 작업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엔지니어가 달라붙어 며칠씩 코드를 수정해야 했고, 이는 인력난과 비용 부담에 시달리는 지역 중소기업들에 큰 진입장벽이었다.

 

하지만 KERI가 개발한 기술은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삼아 복잡한 프로그래밍 없이도 일상적인 언어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로봇에게 “저기 있는 부품을 조립해줘”라고 말하면, AI가 명령의 의도를 파악하고 최적의 작업 동선을 스스로 짜내는 방식이다.

 

기술의 핵심은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이다. 마치 유능한 작업반장이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듯, 언어 담당 에이전트가 지시를 내리면 시각(비전) 담당과 로봇 제어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역할을 분담한다.

 

특히 연구팀은 로봇이 현실 세계의 좌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 헤매던 ‘그라운딩(현실 인식)’ 문제를 해결했다. 비전 에이전트가 카메라를 통해 사물의 3차원 위치를 정밀하게 분석하면, 제어 에이전트가 이를 바탕으로 오차 없는 시나리오를 생성해 실행한다.

 

가상 세계의 지능이 실제 현장의 움직임으로 완벽하게 이어지는 일명 ‘행동하는 AI(Actionable AI)’를 완성한 것이다.  

 

현장 적용 효과는 파격적이다. 과거 전문가가 일주일 내내 매달려야 했던 공정 재설정 작업을 단 1시간 이내로 단축할 수 있다. 처음 보는 물체나 환경에도 즉각 적응이 가능해 다품종 소량 생산이 필요한 중소기업에 안성맞춤이다. 이번 성과는 구글이나 테슬라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하는 ‘VLA(Vision-Language-Action)’ 분야에서 거둔 쾌거다.

KERI 이주경 박사(왼쪽 아래) 연구팀이 자율제조 다중 에이전트 AI 기술을 개발했다. KERI 제공

해외 기술이 거대 모델 위주라 구동이 무거운 것과 달리, KERI의 기술은 제조 현장에 맞게 경량화·모듈화되어 실제 공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이주경 박사는 “이번 기술은 기존 제조 라인을 큰 비용 없이 스마트하게 바꿀 수 있는 솔루션”이라며 “기술 이전을 통해 인력 부족으로 고통받는 지역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KERI와 창원대는 관련 연구에 참여한 인재들을 지역 산업에 공급해 제조 현장의 세대교체와 선순환 생태계 구축에 앞장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