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너무 누른 약가정책, 말라가는 필수약품

낮은 약가 묶여있어 수급 불안정
신약 도입도 걸림돌… 환자들 고통
‘싸게’보다 ‘지속가능 공급’에 중점
가격 보전 등 유연한 접근책 필요

작년 12월 생산이 중단된 아티반 주사제는 재고가 소진되는 1~2개월 내로 공급 공백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응급실, 정신건강의학과, 소아 진료에서 빠질 수 없는 약이지만, 이 필수약 하나조차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단순한 품목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약가정책이 얼마나 심각하게 균형을 잃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제조사는 설비 노후화와 품질 기준 강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업계가 지적하듯 아티반 2㎎의 약값이 782원에 묶여 있는 현실이 핵심 원인이다. 필수의약품이 ‘너무 비싸서’가 아니라 ‘너무 싸서’ 사라지는 기형적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과 국가필수의약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필수약일수록 가격이 수십 년째 묶여 생산 유인이 거의 사라졌다. 이름만 ‘필수’일 뿐, 제조사가 계속 만들 수 있는 조건은 보장되지 않는다.



약값를 낮게 유지하면 단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필수약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순간, 그 비용은 환자와 의료 현장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지금의 약가정책은 ‘재정 절감’이라는 목표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환자 안전이라는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최신 신약 도입에도 치명적인 장애물이 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한국에서 약값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면 다른 국가의 약값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그 결과 한국 출시를 늦추거나, 허가를 받아도 급여 신청을 미루는 일이 반복된다.

일부 분석에서는 글로벌 출시 신약 중 한국에서 1년 안에 환자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이 5% 수준에 불과하고, 해외에서 허가된 신약이 국내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 평균 3~4년이 걸린다는 지적도 있다. 필수약은 사라지고, 신약은 늦게 들어오는 이 구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결국 지금의 약가정책은 양쪽에서 모두 실패하고 있다. 오래된 필수약은 낮은 가격에 짓눌려 공급 불안에 빠지고, 신약은 낮은 약값 기준과 지연된 급여 절차 때문에 제때 들어오지 못한다.

약을 일반 소비재처럼 취급하며 일률적 저가 정책을 고집한 결과다. 필수의약품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혁신신약은 환자의 생존과 삶의 질을 바꾸는 치료 수단이다. 이 서로 다른 두 영역을 같은 잣대로 눌러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만들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약값 인하가 아니라, 약의 성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접근을 취하는 정교한 정책이다. 아티반과 같은 필수의약품에는 원가와 공급 안정성을 반영한 별도의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필수’라고 지정했다면, 제조사가 실제로 계속 생산할 수 있도록 가격 조정, 장기 공급 계약, 공공 비축 등 실질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름만 퇴장방지의약품이라고 붙여놓고 아무런 보전도 하지 않는 제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혁신신약에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사용 중인 치료제가 한국 환자에게만 늦게 도달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격 협상 방식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위험분담제, 약가유연계약제 등은 국제 참조가격 부담을 줄이면서도 환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여기에 허가 후 급여까지 이어지는 절차를 과감히 단축해 치료 공백을 줄여야 한다.

좋은 약가정책은 ‘가장 싼 정책’이 아니다. 필요한 약이 시장에 남아 있게 하고, 가치 있는 신약이 늦지 않게 들어오게 하며, 그 비용을 사회가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나누는 정책이다.

지금 한국의 약가정책은 오랫동안 재정 절감이라는 한 축에 지나치게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아티반 사태가 보여주듯, 약이 너무 싸서 사라지고 신약이 너무 늦게 들어오는 구조는 더 이상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는 ‘얼마나 싸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끊기지 않게 공급하고, 어떻게 늦지 않게 접근하게 할 것인가’를 중심에 둬야 한다.

필수약에는 지속 가능한 보상을, 혁신신약에는 가치 기반의 유연한 접근을 허용하는 이중 전략이야말로 지금 한국 약가정책이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