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률은 2조 1항에 ‘대통령’부터 ‘감사원·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소속 3급 이상 공무원’까지 수사 대상을 명시해 놓았다.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한 2021년 1월을 기준으로 수사 대상이 대략 8000명 정도로 파악된다. 그런데 직종으로 따지면 판사와 검사가 그 절반을 훌쩍 넘는다. 과거 사법시험이 있던 시절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판검사로 채용된 이들은 초임인데도 행정부의 3급(부이사관) 공무원과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옛 행정고시·외무고시 합격자들이 5급(사무관)부터 시작하는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예우가 아닐 수 없다. 공수처가 사실상 ‘판검사 비리 수사처’라는 평가를 들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민이 주는 월급으로 사는 공직자 입장에서 처우가 좋으면 그만큼 공정하고 중립적인 업무 처리를 해야 할 텐데, 일부 검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현직 부장검사부터 전직 검찰총장까지 숱한 이들이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을 국민은 기억한다. 1997년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 이전에 피의자를 조사한 뒤 구치소 등에 가두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검사들 몫이었다. 요즘은 판사가 직접 피의자들을 심문한 후 구속 여부를 결정하니 검사 권한이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범죄 혐의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여전히 ‘검사님이 곧 하느님’이다. 이 막강한 힘을 쓰는 데 있어 검사들이 ‘절제’와 ‘품격’의 가치에 조금만 더 주목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할 때마다 대놓고 판사들을 성토하던 검사들도 동의한 명제(命題)가 있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심판은 판사이고, 법원 판결은 일종의 성역(聖域)으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 경기를 떠올려 보면 간단하다. 심판이 무슨 판정을 내릴 때마다 불만을 품은 선수들이 그를 에워싼 채 거칠게 항의하고, 관중은 ‘우’ 하고 야유를 보낸다면 과연 시합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는가. 대다수 선량한 시민은 심판의 공정성을 믿고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듯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법원에 대해서도 ‘뭐 알아서 잘 판결하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사회는 ‘아귀다툼’의 일상화가 뻔하다.
공수처가 6일 현직 부장판사 A씨를 뇌물수수와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공수처에 따르면 A씨는 2023∼2025년 고교 선배인 변호사 B씨로부터 ‘내 의뢰인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33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공수처가 A·B씨를 상대로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은 “소명 부족”을 이유로 기각됐고, 두 사람 모두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명색이 심판이라는 사람이 설마 그 정도 액수의 돈에 매수를 당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기소가 이뤄진 만큼 향후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법원이 신뢰를 잃으면 대한민국은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