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1958년 2월 모 신문에 정치인들의 ‘공약’(空約)을 지적하는 칼럼이 실렸다. 후보자들을 향해 “의원이 되면 무엇을 해보겠다는 신념이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필자는 “공약을 내세우겠지만 곧이들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거짓말 탐지기를 거론하며 “후보자들에게 한번씩 이 기계를 써보았으면 하는 망상이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1950년대에 이미 거짓말 탐지기가 제법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연방의회 의원들이 한국 정부가 고용한 로비스트에게서 금품을 받았다는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터졌다.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는 매섭게 굴었다.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을 한국에 급파해 대표 로비스트로 지목된 박동선씨를 직접 조사할 것을 고집했다. 1978년 1월 덕수궁 옆 대검찰청 건물(현 서울시 서소문 별관)에서 이뤄진 조사에는 미국이 공수한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됐다. 어쩔 수 없는 약소국의 비애였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1998년 12월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를 재판의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거짓말 탐지기는 피조사자의 혈압, 호흡, 피부 등에 나타난 무의식적 변화를 통해 진술의 진위를 가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인간은 거짓말 탐지기도 속일 수 있다”며 “믿을 수 없고 과학적 근거도 약해 형사재판 판결을 좌우할 증거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시했다. 우리 대법원도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고검 인권침해점검 태스크포스(TF)가 최근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측이 제기한 ‘연어 술 파티 진술 회유’ 의혹과 관련해 “술 파티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달 TF가 이 전 부지사를 상대로 실시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 ‘진실’ 반응이 나온 점이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고 한다. 당시 수사를 맡은 박상용 검사는 “술자리가 있었다는 진술은 (관련자들 중) 이화영의 진술 하나뿐”이라며 “애초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답정너’ 수사였다”고 반박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허튼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