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대만까지… 美·中 정상, 지정학·기술패권 두고 베이징서 대좌 [차이나우]

이란 전쟁이 바꾼 의제, 경제보다 지정학 우선
AI·반도체 공세에 ‘희토류 무기화’로 맞불
‘이란 중재’ 요구하는 美, ‘대만 불개입’ 압박하는 中
9년 만의 트럼프 방중, 新냉전 마지노선은 어디까지

중동 정세 불안으로 한 차례 연기됐던 미·중 정상회담이 14∼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성사될 전망이다.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인 2017년 11월 이후 9년 만이고, 미·중 정상회담은 지난해 10월30일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뒤 약 6개월 만이다.

 

무역 갈등이 주요 쟁점이었던 지난해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글로벌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양국 정상의 회담에서는 중동·대만 등 지정학적 이슈가 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5년 10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대 현안 ‘이란 문제’ 논의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외교적 존재감을 키우는 중국은 6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 아라그치 장관은 “이란은 국가 주권과 민족 존엄을 확고히 수호하고, 동시에 평화 협상의 방식을 통해 부단히 공동인식을 누적함으로써 포괄적·영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란은 중국이 평화 촉진·전쟁 종식을 위해 계속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왕 부장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이란의 약속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란은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해 핵물질 처리를 놓고 미국과 대립하는 이란에 힘을 실어줬다.

 

양국은 올해 수교 55주년을 맞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한층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압박의 도구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초반부터 중국과 이번 전쟁을 연관 지으려는 제스처를 보여왔고,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을 부각하거나 중국의 이란 지원 정황을 언급하며 시 주석을 압박했다. 이달 들어선 이란의 석유 제품 수입 창구로 지목된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기도 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호르무즈해협 위기 해결을 위한 중국의 책임을 부각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역시 “이란의 해협 봉쇄 중단은 수출 주도형 경제인 중국을 위한 일”이라며 이란을 설득하라고 촉구했다.

 

리밍장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중국을 통해 이란에 더 큰 압력을 가해 양보를 끌어내거나 굴복시키길 기대하지만, 중국이 이란과의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중화권 전문가 중에는 시 주석이 미국산 원유·농산품 수입 확대와 희토류 공급보장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현재 정권을퇴출하지 않고 전쟁을 끝내는 교환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의견도 나온다.

회담장에 나온 미중 정상. UPI연합뉴스

◆‘임시 휴전’ 무역전쟁 어떻게 되나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부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반년 넘게 이어졌던 무역 갈등을 잠정 봉합하고, 보복 관세·희토류·펜타닐 등 주요 의제에 관해 1년 시한의 휴전 합의를 했다.

 

하지만 양국의 후속 논의는 부산 회담 이후 뜸해졌다. 지난해 4월 관세 전쟁 본격화 이후 스위스 제네바(5월), 영국 런던(6월), 스웨덴 스톡홀름(7월), 스페인 마드리드(9월)로 장소를 바꿔가며 거의 매달 열린 양국 간 고위급 무역 회담은 올해 들어선 3월 프랑스 파리 회담 외엔 개최되지 않았다. 올해 2월 말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뒤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중동으로 옮겨갔기 때문으로 보이며, 전쟁 여파로 애초 3월 말∼4월 초로 거론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역시 한 달 이상 연기됐다.

 

미국은 최근 중국 업체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나 이란과 원유 거래가 의심되는 중국 업체 제재 등으로 정상회담 전 기싸움에 나섰고, 중국은 지난달 말 희토류 통제 수위를 끌어올리는 규정을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美 AI·반도체 vs 中 희토류

 

첨단 기술 통제 등 미·중 글로벌 경쟁도 이번 정상회담에서의 관전 포인트다. 특히 미국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의 협력과 중국에 대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백악관 행사에서 “우리가 AI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은) 매우 우호적인 경쟁자다. 그렇지만 사실 (이번 방중은) 아주 중요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AI 기술을 탈취한 정황을 확보했다고 밝히며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을 포함한 추가 쟁점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재무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세계 양강 지도자들이 AI를 공식 의제로 처음 논의하는 역사적 장면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관세 전쟁을 통해 희토류가 위력적인 대미 공격 카드임을 확인한 중국은 이를 무기로 미국의 양보를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자국산 첨단 기술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미국 빅테크 메타의 중국계 AI 스타트업 마누스 인수 불허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술 자신감이 한층 커진 점도 변수로 지목된다.

 

다만 정상회담을 통해 현재 휴전 상태인 양국 간 관세 전쟁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연이은 고위급 회담으로 회담 의제를 장기간 준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이란 전쟁 때문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AP연합뉴스

◆‘레드라인’ 대만 문제도 논제 오를 듯

 

전통적 난제인 대만 문제도 빠질 수 없는 의제다. 루비오 장관은 “대만은 대화 주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중국이 ‘레드라인’으로 꼽는 대만을 두고 최근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나 미국은 지난해 대만에 111억달러(약 16조7000억원) 규모 무기 판매 계획을 승인하는 등 안보 지원을 지속하며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왕이 부장은 정상회담 전초전 격이었던 지난달 30일 루비오 장관과의 통화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자 중미 관계의 최대 리스크다. 미국은 약속을 지키고 올바른 결정을 함으로써 중·미 협력에 새로운 공간을 열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해야 한다”며 대만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올릴 것임을 예고했다.

 

미·중 간 주요 이슈 중 하나인 대만 문제는 지난해 부산 정상회담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대만 통일을 공언해온 중국은 미국의 대만해협 문제 개입에 민감하게 반응해왔지만 관세 전쟁 휴전이 최대 과제였던 지난 회담에선 대만 문제가 밀려났다.

 

외교가에선 시 주석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란 중재를 지렛대로 협상력을 높이려고 시도하는 만큼, 대만 무기 판매 중단 등 미국을 향한 요구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나마 운하 운영권 갈등과 쿠바 제재 문제 등 제3지대에서의 충돌도 이어지고 있다. 파나마 의원단의 방중을 두고 양국이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미국의 쿠바 제재 확대에 대해 중국은 “불법적 일방 제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자국 내 불법 체류 중국 국적자의 송환 협조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조치를 검토하고 나서면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