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대신 숲으 로 간 억만장자

‘노스페이스’ 창립자인 톰킨스
패션제국 떠나 환경운동가로
파타고니아 숲 산 뒤 보존운동
1130만ha 국립공원 조성 결실
“성공 후 삶 방향은” 묵직한 질문

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조너던 프랭클린/강동혁 옮김/복복서가/2만5000원

 

미국 탐사언론인 조너던 프랭클린이 쓴 이 책은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창립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더글러스 톰킨스 삶을 박진감 있게 그린 평전이다. 원제 ‘A Wild Idea’에서 드러나듯, 책은 한 개인의 ‘야생적 결단’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를 추적한다. 저자는 톰킨스가 발로 누볐던 자연을 직접 답사하고, 아웃도어브랜드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 등 160여명 인터뷰, 수천 페이지의 미공개 자료를 토대로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복원했다. 세계적인 기업가가 정상에서 내려와 일평생 이룬 부(富)를 숲 보전에 내놓으며 환경운동가라는 ‘다른 산’에 올라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꾼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스물한 살의 더그 톰킨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술집과 스트립 바 사이에 작고 허름한 가게를 열었다. 이름은 ‘노스페이스’. 산의 북쪽 면, 가장 거칠고 까다로운 등반 루트를 뜻했다. 남쪽 면은 햇빛에 눈이 부드럽고 따뜻하죠. 난 어려운 면이 더 좋아요. 거칠고 얼어붙은 면이요. 난 인생에서도 바로 그 길을 택합니다.”(12쪽) ‘나는 늘 더 거칠고 어려운 길을 택한다’로 요약되는 ‘노스페이스’라는 이름에 담았던 이 문장은 그의 인생 전체를 설명한다.

 

더글러스 톰킨스가 생전에 조성에 힘쓴 파타고니아 국립공원의 탐방로를 걷고 있다. ⓒ베스 월드

1960년대 미국, 자유와 모험의 기류 속에서 톰킨스는 자연에 매료된 젊은이였다. 1966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등산용품점에서 출발한 노스페이스는 기능성과 디자인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이 커질수록 그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났다. 더 큰 성공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의 ‘이탈’이었다. 이후 그는 패션 브랜드 에스프리를 창업해 또 한 번 세계적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 붙들지 않았다. 대량생산과 소비구조가 자연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성공, 두 차례의 이탈. 이 지점에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방향을 튼다. 49살, 그는 연 매출 1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정리하고 전기도 수도도 없는 남미 파타고니아로 향한다. 인간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덜 닿은 이 지역은 인생 후반,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단순한 기부나 캠페인이 아니었다. 훨씬 급진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땅을 사들이는 것이다. 막대한 개인 자산을 투입해 광대한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개발 압력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숲과 습지, 초원을 사들였고, 그 위에 어떤 개발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사회와 갈등도 있었다. 외국인이 대규모 토지를 사들이는 것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았다.

 

조너던 프랭클린/강동혁 옮김/복복서가/2만5000원

그럼에도 그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정부를 설득해 자신이 매입한 토지를 더 이상 사유지가 아닌 ‘공공의 자연’인 국립공원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그 배경에는 끝없는 성장과 소비가 과연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딥 에콜로지(Deep Ecology·심층생태주의)’ 철학에 깊이 매료됐다. 이는 인간을 자연의 중심에 두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동식물, 강과 숲, 바다를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사상이다. 자연을 단지 인간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역시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바탕에 둔다. 결국 그의 보존 활동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는 철학적 실천에 가까웠다.

안타깝게도 2015년, 그는 카약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장소는 그가 평생 지키려 했던 파타고니아의 호수였다. 그의 죽음 이후 칠레 정부는 그가 기부한 1130만ha, 남북으로 약 2700km에 걸친 면적의 국립공원으로 조성했다. 사후에 그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이 공원은 한 개인이 한 국가에 한 최대 규모의 토지기부였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 기업인으로서의 정상에서 내려와 환경운동가라는 ‘다른 산’에 오른 더글러스 톰킨스의 여정을 통해 한 인간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갈 때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전향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근본부터 다시 설정한 결단이었다.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덜 소비하는 삶, 끊임없는 성장 대신 보존을 택한 그의 행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성공 이후의 삶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한 기업인의 일대기를 넘어,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성찰로 독자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