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은 어떻게 기술 강국이 됐나

국가가 설계하고 시장이 검증하는
톱니바퀴처럼 설계된 ‘중국식 혁신’

기술을 생존·안보 핵심자원 인식해
샤오미·화웨이 다층적 생태계 조성

韓, 초격차 유지하되 유연성 발휘해
G2 선택적 결합 ‘이원화 전략’ 필요

테크노스테이트 차이나/정구현·김영배·김용준·김창현·노은영/클라우드나인/2만3000원

 

게티이미지·화웨이·샤오미·BYD·연합뉴스

21세기 들어 지난 25년, 세계 질서를 뒤흔든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단연 중국의 부상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만 해도 중국은 값싼 노동력과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운 ‘하청 생산기지’로 인식됐다. 외국 기업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고, 해외 기술과 장비를 들여와 가공무역으로 성장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은 전혀 다른 좌표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통신 네트워크, 우주항공, 로봇, 드론, 바이오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다. 세계 산업 질서의 방향을 바꾸는 핵심축으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저가 공산품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어떻게 사반세기 만에 미국을 위협하는 기술강국으로 도약했을까.

정구현 제이캠퍼스 원장과 김영배 KAIST 명예교수, 노은영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등 5명의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중국의 도약을 ‘테크노스테이트(Technostate)’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저자들에 따르면 테크노스테이트란 기술을 단순한 산업 경쟁력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체제 정당성, 산업 안보와 국제 질서를 좌우하는 핵심 자원으로 인식하는 국가를 뜻한다. 다시 말해 국가가 전략을 설계하고, 시장이 이를 검증하는 중국식 혁신 시스템이다.

 

정구현·김영배·김용준·김창현·노은영/클라우드나인/2만3000원

이 책은 추상적 개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사례를 통해 중국식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보여준다. 대표 사례가 샤오미의 전기차 SU7이다. 애플이 10년 가까이 전기차 개발에 매달리다 2024년 프로젝트를 접은 것과 달리 스마트폰 기업이었던 샤오미는 2021년 전기차 사업 진출을 선언한 지 불과 3년 만에 제품을 출시했다. 이 극적인 속도 차이는 기업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샤오미는 배터리를 CATL·BYD에서 공급받고, 모터와 핵심 부품은 전문 기술기업에서 조달하며, 생산은 중국 전역의 제조 클러스터를 활용했다. 즉, 부품·소재·장비·제조 역량이 모두 국내에 집적된 ‘풀세트 공급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들은 이를 중국 산업의 ‘다층적 생태계’로 설명한다. 하단에는 지역 제조 클러스터, 중층에는 ‘전정특신(전문화·정밀화·특성화·혁신)’ 기업, 상단에는 샤오미 같은 플랫폼 기업이 자리한다. 샤오미는 이 구조 위에 소프트웨어와 사용자 경험을 결합해 자동차를 ‘바퀴 달린 스마트 기기’로 재정의했다. 결국 샤오미의 속도는 한 기업의 속도가 아니라 중국 산업시스템 전체의 속도라는 것이다.

또 다른 축은 화웨이다. 1987년 런정페이가 창업한 화웨이는 출발 당시 전화 교환기를 수입·판매하던 작은 기업에 불과했다. 글로벌 기업과 수백 개 토종기업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생존을 이어가며 성장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다. 안드로이드 접근 차단, 반도체 공급 제한, 글로벌 네트워크 배제 압력 등은 화웨이의 몰락을 예상하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재는 오히려 화웨이를 독자 생태계 구축으로 밀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외부 의존을 줄이고 내부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편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위기가 방어가 아니라 구조 전환의 촉매가 된 사례”로 평가한다. 현재 화웨이는 자율주행, 스마트 콕핏, 차량용 운영체제 등으로 자동차산업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샤오미와 화웨이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기업과 공급망, 치열한 시장 경쟁, 그리고 국가 전략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하나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저자들은 중국을 단순한 제조 강국이 아니라 기술·시장·국가 전략이 결합된 ‘테크노스테이트’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기술을 통해 강대국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기술 없이는 강대국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는 일은 곧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과 직결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중국을 단순한 위협이나 막연한 경쟁 대상으로만 인식해서는 현실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다.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기술 역량을 축적하고, 어떤 제도와 산업 생태계를 통해 혁신을 현실화하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책 말미에서 제시하는 이른바 ‘글로벌 3등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미·중 경쟁이 패권 다툼을 넘어 기술 표준과 공급망, 자본 흐름을 재편하는 정교한 게임으로 진화한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더욱 복잡해졌다. 저자들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양자택일을 넘어서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전략을 제안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강점 분야에서는 초격차 기술을 유지하는 한편, 공급망과 시장에서는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원천기술과 자본, 제도적 기반을 활용하면서도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빠른 산업화 속도를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