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슬리퍼를 잠깐 빌려 신었을 뿐인데 발가락 사이가 가렵기 시작했어요. 설마 했는데 피부과에서 평생 없던 무좀 진단을 받았습니다”
서울에 사는 30대 주부 김모 씨의 사연이다. 김씨는 남편이 오랜 기간 발 무좀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슬리퍼를 잠깐 빌려 신는 것쯤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판단은 틀렸다.
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무좀’(족부 백선·Tinea Pedis)은 국내 성인의 약 15~20%가 앓는 흔한 피부 질환이다.
수백만 명이 무좀으로 의료기관을 찾으며, 여름철을 앞두고 환자 수가 급증하는 양상이 반복된다. 문제는 완치 후에도 재발률이 높고, 가족 간 전파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는 “공용 신발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 각질 한 조각으로도 전파…공용 신발이 주범
무좀의 원인균은 피부사상균(Dermatophyte)의 일종인 트리코피톤(Trichophyton) 속 곰팡이다.
이 균은 감염된 피부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 조각에 붙은 채 수 주에서 수 개월간 생존할 수 있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각질 조각 하나만으로도 감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장 흔한 감염 경로는 가족 공용 슬리퍼와 신발이다. 욕실 바닥, 욕조 매트, 공용 수건도 주요 매개체로 꼽힌다.
수영장, 헬스장 탈의실, 찜질방처럼 불특정 다수가 맨발로 이용하는 공간도 위험하다.
특히 온도 25~35°C, 습도 70% 이상의 환경에서 균이 활발하게 번식하는데, 신발 내부는 이 조건을 상시 충족한다.
여름에 무좀이 빈번한 것도 이런 조건 탓인데, 오랜 시간 꽉 끼는 신발을 착용하거나 발 땀이 많은 사람일수록 발병 위험은 더 높아진다.
◆ 증상 유형도 다양…손발톱까지 퍼지면 치료 길어져
무좀은 나타나는 부위와 양상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가장 흔한 지간형은 발가락 사이 피부가 짓무르고 껍질이 벗겨지면서 심한 가려움을 동반한다.
소수포형은 발바닥과 발가락에 작은 물집이 생기는 형태로, 물집이 터지면서 진물이 나고 2차 세균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각화형은 발바닥 전체가 두껍게 각질화되고 건조하게 갈라지는 형태로,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 초기에 치료를 받지 않거나 치료를 중단하면 균이 손발톱으로 번져 ‘조갑 백선’(손발톱 무좀)으로 발전한다.
조갑 백선은 손발톱이 두꺼워지고 황갈색으로 변색되는 것이 특징이며, 이 단계로 접어들면 외용 연고만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수개월간 경구 항진균제를 복용해야 한다.
◆ “증상 사라져도 2~4주 더 발라야”…중단이 재발 부른다
무좀 치료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증상이 나아 보이면 약을 끊는 것이다. 가려움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육안으로 증상이 사라진 이후에도 최소 2~4주간 꾸준히 도포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손발톱 무좀이나 전신으로 확산된 경우에는 피부과에서 처방하는 이트라코나졸, 테르비나핀 경구제 복용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무좀 재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가족 내 미치료 환자를 꼽는다.
한 가족 구성원이 치료를 완료해도 다른 구성원이 무좀균을 보유하고 있거나, 집 안 욕실 바닥·슬리퍼에 균이 잔존하면 재감염이 반복된다.
무좀은 흔한 질환인 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조기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만성화를 막고 가족 내 전파를 차단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