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폰의 황제’로 불리던 핀란드 기업 노키아는 1998년 미국 기업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올랐다. 2007년에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 점유율을 기록했고, 핀란드 수출 물량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2013년 자사 모바일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기게 될 정도로 몰락하게 된다. 잘 나가던 노키아는 왜 몰락했을까? 또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 목재 펄프 공장으로 첫 발
1865년 핀란드 노키안비르타 강가 인근에서 목재 펄프 공장으로 시작한 노키아는 1970년에는 계열사 20여개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후 주요한 수출 시장이었던 소련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노키아의 경영은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풍파를 겪던 노키아에 ‘리더’가 나타난다. 바로 요르마 올릴라(Ollila) 명예회장이었다. 1992년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노키아의 주력이었던 제지, 펄프, 고무 등의 진행 중이던 사업을 정리하고 통신 부문에 집중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노키아는 1998년에는 미국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 1위에 오른다.
◆ 스마트폰 경시, 운영체제 OS 경쟁에서 ‘한계’에 직면하다
2006년 올릴라 회장 퇴임과 함께 노키아는 위기를 마주한다. 2007년 전후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다. 피처폰으로 ‘세계 1위’ 타이틀에 취해있던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틈새 상품’으로 치부하는 등 시장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변화의 적기를 놓쳤다.
2001년 출시해 한때 전 세계 모바일 운영체제 점유율의 70~80%를 차지했던 노키아 대표 OS ‘심비안’도 한계를 맞닥뜨리게 한 요소다. 누적 보급 수량 3억대를 넘기면서 유럽, 중국, 러시아 등 일부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한국·미국·일본을 비롯한 주요 IT 선도 시장에서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피처폰과 PDA 환경 최적화 하드웨어 중심의 OS로 스마트폰 환경에 알맞지 않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또 다른 OS ‘미고’ 개발에도 착수했지만 일정 지연으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노키아는 2009년에야 뒤늦게 아이폰을 따라잡겠다며 내놓은 ‘N97’이 불편한 사용자 환경으로 혹평을 받는 등의 처지에 놓였다. 점차 벌어진 경쟁사와의 OS 사용 경험은 노키아가 삼성전자와 애플에 시장 주도권을 내준 결정적 계기로 손꼽힌다.
◆ 수익성 악화로 귀결된 신흥시장 공략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린 노키아의 전략 핵심은 저가형 휴대전화 공급을 통한 시장 선점이었다. 통화와 문자 중심의 피처폰 수요가 견고한 지역에서 피처폰 판매량을 확대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낮은 원가 구조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화웨이 등의 시장 진입으로 이마저도 한계에 직면했다.
저가 피처폰 판매에 따른 수익 감소는 스마트폰 전환기에서의 대규모 투자 여력을 약화시켜 결국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이 되고 말았다.
내부에서는 스마트폰 시대 도래를 다소 예견했지만 조직 전반의 구조적 한계에 따른 과감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전략적 전환이 지연됐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홍진환 수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노키아 내부에는 위기를 인지하고도 각 계층의 관리자가 자신의 안위와 책임 회피에 몰두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오너 중심 구조에서는 손실을 감수하고도 방향을 뒤집는 결단이 가능하지만, 서양식 주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전략 전환이 주주 불안을 키울 수 있어 경영진이 단기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석준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노키아의 실패는 의사결정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투자 여력이 있었음에도 선택에 나서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 새로운 CEO의 등장, '심비안'을 버렸지만 직접적인 휴대전화 제조에서 손을 떼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캐나다인 스티븐 엘롭이 2010년 노키아의 새로운 최고경영자로 등장한다. 취임 후 심비안을 과감하게 버리고 MS의 윈도우 모바일 OS를 채택했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결정도 악화된 상황을 타개하지 못했다. 해당 운영체제가 소비자들의 혹평을 받으면서다. 보편적 확산조차 되지 못해 앱 개발자도 확보할 수 없었고, 결국 OS 생태계의 다양성을 놓친 꼴이 됐다.
노키아와 MS가 공동 개발한 윈도우폰 ‘루미아’의 실패로 경영 상황은 더 나빠졌고, 2010년 29%였던 노키아의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2014년 1분기엔 11%로 떨어졌다. 모바일 사업부 전체 매각과 핀란드 기업 ‘HMD 글로벌’이 노키아 브랜드 라이선스 확보로 한동안 해당 기업의 제품을 팔았지만, 노키아 자체는 휴대전화 제조 사업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노키아의 실패가 남긴 경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노키아의 실패는 ‘과거 성공 경험으로 인한 안주’, ‘스마트폰·운영체제 OS 경쟁 한계’, ‘신흥시장 중심 저가 전략’, ‘내부 구조적 문제’ 등으로 풀이된다. 노키아의 몰락은 과거의 실패 사례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언제든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결국 노키아의 사례가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기술을 보유하고도 선택하지 못하는 순간, 성공 경험에 안주하는 순간, 그리고 플랫폼 변화를 과거의 성공 경험으로 판단하는 순간 기업의 몰락은 시작된다. 지난해 엔비디아로부터 10억달러 규모의 지분 투자를 받으면서 일각에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얻는 노키아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양 교수는 “새로운 기술을 바라보고 사업 가능성과 매칭하지 못하면, 기술 하나를 놓치는 순간 회사 하나가 무너지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고 노키아의 사례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