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챙기려 마셨는데…”
출근 전 부엌. 선식 통 뚜껑을 열고 우유를 붓는다. 고운 가루가 컵 안에서 풀리고, 몇 모금 넘기면 아침을 챙겼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현미, 보리, 율무가 들어갔다는 문구도 안심을 보탠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 간편한 한 잔이 아침 첫 혈당 곡선을 예상보다 가파르게 만들 수 있다.
8일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9세 이상 성인의 당뇨병 유병률은 남성 12.0%, 여성 6.9%였다. 남성은 8명 중 1명 가까이가 혈당 관리를 일상 과제로 안고 사는 셈이다.
◆문제는 곡물이 아닌 ‘마시는 방식’
선식 자체를 나쁜 음식으로 볼 필요는 없다. 현미와 보리, 율무 같은 곡물은 식이섬유와 탄수화물을 함께 가진 식재료다. 통곡물 형태로 씹어 먹을 때는 입안에서 부서지고, 삼키며, 소화되는 과정이 비교적 길게 이어진다.
하지만 곱게 갈린 분말은 다르다. 물이나 우유에 타서 빠르게 넘기면 씹는 시간이 거의 사라진다. 특히 공복 상태에서 선식만 단독으로 마시면 탄수화물이 짧은 시간 안에 들어오면서 혈당 반응이 커질 수 있다.
곡물의 입자 크기와 식품 형태가 식후 혈당과 인슐린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도 있다. 물론 모든 선식, 모든 곡물 제품에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은 아니다. 제품의 원료 배합, 당류 첨가 여부, 1회 섭취량, 함께 먹는 음식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혈당이 높은 사람이라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곡물로 만들었다’는 문구만 보고 안심하기보다, 그것을 공복에 얼마나 빨리 마시는지를 봐야 한다.
◆꿀 한 숟갈, ‘건강식’의 계산을 바꾼다
아침 선식에 꿀이나 설탕, 시럽을 더하는 습관도 변수다. 꿀은 자연식 이미지가 강하지만, 혈당 관리 관점에서는 단맛을 내는 재료라는 사실이 먼저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은 설탕이나 꿀 등 단순당은 소화흡수가 빨라 혈당을 급격히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식품안전나라 역시 설탕과 청량음료처럼 단순당이 많은 식품은 혈당을 빠르게 높일 수 있다고 안내한다.
선식도 예외가 아니다. 제품에 이미 당류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 꿀까지 더하면 ‘간단한 건강식’이 아닌 ‘마시는 탄수화물 식사’에 가까워질 수 있다.
혈당이 빠르게 오른 뒤 다시 떨어지면 오전 중 허기와 피로감이 몰려올 수 있다. 아침을 먹었는데도 점심 전부터 배가 고프고, 책상 앞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꼭 수면 부족만은 아닐 수 있다.
◆첫 모금 전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선식을 끊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적인 방법은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선식을 첫 입으로 마시기보다 삶은 달걀, 두부, 무가당 그릭요거트처럼 단백질이 있는 음식을 먼저 먹는 편이 낫다. 여기에 견과류를 작은 한 줌 정도 곁들이면 지방과 식이섬유가 더해져 포만감도 오래간다.
미국 와일 코넬 의대 연구진은 2형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채소와 단백질을 탄수화물보다 먼저 먹었을 때 식후 혈당과 인슐린 반응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식사 순서가 약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매일 반복되는 아침 습관을 바꾸는 데는 충분히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태리약사’로 알려진 김경은 약사도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하루 시작의 첫 음식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선식 섭취 방식에 주의를 당부했다. 핵심은 선식 자체보다 공복에 단독으로 빠르게 마시는 습관이다.
◆앞면 문구보다 ‘뒷면 숫자’를 봐야 한다
제품을 고를 때는 앞면의 ‘건강식’, ‘곡물’, ‘영양’ 문구보다 뒷면 영양성분표를 먼저 봐야 한다.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저당은 식품 100g당 당류 5g 이하를 뜻한다. 하지만 이 기준만 보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선식은 실제로 한 번에 몇 g을 타 먹는지에 따라 당류와 총탄수화물 섭취량이 달라진다.
확인할 것은 세 가지다. 1회 섭취량 기준 당류가 얼마나 되는지, 총탄수화물은 어느 정도인지, 단백질은 충분한지다. 단맛이 강한 제품이라면 원재료명에 설탕, 기타과당, 올리고당, 시럽류가 들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우유에 타 마시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유는 단백질과 지방을 함께 갖고 있지만, 제품 종류와 양에 따라 열량과 탄수화물 섭취량이 달라진다. 혈당을 엄격히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무가당 두유나 물을 선택하되, 단백질 식품을 따로 곁들이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아침 선식 한 잔은 누군가에게 편한 식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당뇨병을 진단받았거나, 당뇨병 전단계라는 말을 들었거나, 식후 졸림과 허기를 자주 느낀다면 마시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내일 아침 선식 통을 꺼낸다면 컵부터 들지 말고, 삶은 달걀 1개를 먼저 접시에 올려둬도 좋다. 혈당 관리는 거창한 결심보다 첫 모금 앞에 무엇을 놓느냐에서 시작된다.